하윤 케인 변호사
하윤 케인 변호사

신발은 패션의 완성이라고들 한다. 패션을 사랑하는 미국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의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는 마놀로 블라닉, 지미추 등 디자이너 신발을 사느라 번 돈을 몽땅 탕진할 정도였다. 섹스앤더시티가 요즘 나온 드라마였다면 캐리 브래드쇼가 가장 사랑하는 신발은 발렌티노였을 지도 모른다.

패션 디자이너 발렌티노 가라바니는 1932년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보게라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두각을 나타냈는데, 이 재능을 부모가 일찍 발견하여 어린 시절부터 파리에서 패션 공부를 했다. 패션의 중심지인 파리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발렌티노는 이탈리아로 돌아와 아버지의 금전적인 지원으로 1960년 로마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를 오픈하며 지금의 발렌티노가 문을 열게 됐다.

브랜드는 2008년 설립자 발렌티노가 은퇴한 후 브랜드가 잠시 성장 동력을 잃은 듯했다. 그러던 중 2010년, 락스터드 신발이 등장하며 브랜드는 다시 활기를 찾는다. 락스터드 신발은 구두의 가장자리나 스트랩 등을 금속 징으로 장식한 것이다. 피라미드 모양의 징은 이후 가방 등 다양한 제품에 사용되며 브랜드 내에서 자리를 공고히 했다. 우아하면서도 볼드하고 펑키한 느낌이 단숨에 각종 시상식과 레드카펫을 장악하고 머스트해브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락스터드 신발은 2014년에서 2019년까지 총 2억4천8백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며 브랜드의 효자상품이 됐다. 버버리의 상징인 체크무늬, 샤넬을 대표하는 퀼팅 기법처럼 이제 피라미드 모양 락스터드 징은 발렌티노의 상징이 됐다.

발렌티노는 이 디자인을 보호하기 위해 2019년 10월 미국 상표청에 상표 등록을 시도했다. 등록된 디자인은 총 세 가지로 T자 모양의 스트랩과 발목 스트랩이 있는 펌프스, T자 모양 스트랩과 발목 스트랩 두 개가 있는 디자인, 락스터드로 장식된 플랫 슈즈다. 모두 락스터드가 장식된 부분에 대해서만 권리 주장을 했다.

발렌티노의 바람과 달리 상표청은 세 디자인에 대해 상표 등록을 거절했다. 신발 디자인은 기능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상표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상표는 특정 브랜드를 나타내는 기능을 하는 요소를 보호하는 반면 기능성이 내재되어 있는 부분은 특허의 영역이다. 상표청 변호사는 락스터드 디자인이 브랜드를 나타내는 특징적인 부분이 아니며 제품 디자인의 일부이기 때문에 상표로 등록을 시켜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상표청은 또한 소비자들이 락스터드 부분을 보고 ‘발렌티노’라는 브랜드를 떠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락스터드 디자인에 쓰인 징은 신발 디자인에 흔히 사용되는 장식요소라는 이유에서였다. 전 세계 발렌티노 팬들이 발끈할 만한 얘기다.

발렌티노 측 변호사는 상표등록을 위해 세 구두의 락스터드 부분이 어떻게 브랜드를 상징하는 디자인이 됐는지 입증해야 했다. 어떤 디자인이 단순 장식이 아닌 브랜드를 상징하는 이차적 의미를 지니는지는 여러 요소를 가지고 판단한다. 총 판매 금액, 미디어 노출 회수 등은 유의미한 지표가 된다.

발렌티노측은 각 락스터드 제품이 지난 오 년 간 모두 수천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음을 증거로 제시했다. 또한 십 년 이상 패션계에서 잇 아이템으로 각광 받았으며 꾸준히 수익을 낸 점도 락스터드 제품이 단순 장식이 아닌 ‘브랜드’로의 가치를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각종 매체에 락스터드 제품이 등장한 것도 발렌티노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발렌티노는 수 백만 달러를 들여 락스터드 신발 제품을 홍보해왔으며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쌓았다고 주장했다. 수많은 유명인들이 락스터드 신발을 신고 각종 이벤트에 등장한 모습, SNS, 잡지 등에 신발이 등장한 것도 모두 발렌티노에 유리한 증거가 됐다.

상표청은 발렌티노의 주장을 받아들여 2020년 12월 락스터드 제품의 상표 등록을 허가했다. 상표권을 확보했으니 앞으로 발렌티노가 락스터드 위조품 단속에 더 박차를 가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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