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한 사람에게서 집중적으로 배우는 것이 나을까요, 아니면 여러 사람에게서 두루두루 배우는 것이 나을까요? 전문 기술이라면 전자가, 지식 교양이라면 후자가 나을 것 같습니다. 전자의 방법은 이른바 도제식(徒弟式) 교육이라고도 부릅니다. 한 사람의 스승 밑에서 그의 모든 것을 배웁니다. 보통은 숙식을 같이 하면서 스승의 기술과 지식과 인간됨을 일일이(보고 따라 하면서) 배웁니다. 그런 제자를 도제라고 부릅니다. 특정한 기술을 연마하는 데에는 도제식 교육이 효과가 있습니다. 학교 교육은 그와는 달리 여러 사람의 스승이 돌아가면서 학생들에게 자기 전공과목을 가르칩니다. 학생들은 여러 스승으로부터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면서 특정 분야의 전문인이나 사회의 교양 있는 성원으로서의 필요 요건을 하나씩 갖추어 나갑니다. 현대의 지식분량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교육은 주로 학교 교육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일반적인 배움의 과정과는 조금 다른 수련(修鍊) 활동(교육과 학습)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릴까 합니다. 무도(武道)든 기예(技藝)든 모든 수련 활동의 핵심은 ‘행동의 깊이’를 터득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동작을 아무나 할 수 없는 동작으로 승화시키는(표현해 낼 수 있는) 경지를 획득하는 것, 혹은 기술이나 힘을 능가하는 심안(心眼)의 존재를 증명해 낸다는 것 등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 ‘경지 게임’에는 당연히 반복적인 동작 연습이나 상호 대련(對鍊)이 필수적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 그런 연습과 대련이 축적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수련의 경지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런 수련 활동에서는 어떨까요? 한 사람의 스승이나 도반과 오래 연습하고 대련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다양하게 배움의 상대를 찾아다니는 것이 좋을까요? 언제가 본 검도 수련 동영상 생각이 납니다. 이웃 나라 방송이었는데 70대의 노검사(범사 8단)가 20대의 젊은 검사(4단)와 시합대련을 해 보이는 영상이었습니다. 2~3분 이리저리 공격의 틈을 노리던 젊은 검사가 머리치기 한 판을 성공시켰습니다. 시합을 마친 뒤 노검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한 사람과 자주 해서 강한 사람이 되게.” 모르는 사람들은 늙어서 기력이 쇠잔한 노검사가 자신은 더 이상 가르칠 바가 없으니 더 강한 사람을 찾아다니며 수련을 하라고 권고하는 것으로 들었을 수도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아직 그 젊은 검객의 수련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자세도 깊이가 덜했고 70대 노스승의 허(虛)를 2~3분 동안이나 찾지 못했다는 것은 일류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2~30초 안에 그가 치고 들어왔다면 노사(老師)는 다른 말씀을 했을 겁니다. “좋았네. 계속 그렇게 연습하게.” 아마 그런 격려가 나갔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수련 활동은 ‘사람 공부’를 수반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술이나 기예는 사람의 몸으로 구현되지만 그 경지에는 늘 사람의 정신이 관여합니다. 한 사람에게서 배우든 여러 사람에게서 배우든 기술이나 기예를 최종적으로 주관하는 것은 그 정신입니다. 그 정신을 배울 수가 있어야 진정한 제자가 됩니다. 마지막 기술은 언제나 내 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 기술에 대한 경탄이 내 모든 수련 활동의 최종 목표가 된다는 것, 다름 아닌 그것을 기대(목표)하며 ‘계속하던 대로 꾸준히 연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수련입니다. 그 의지가 결국 ‘오직 한 사람의 스승’일 뿐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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