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설날이나 추석에 가족들이 여럿 모이면 신혼부부 등 젊은층은 정확한 가족 호칭을 몰라 당황할 때가 많다. 신랑신부는 시댁과 처가댁에서 가족들을 부르는 호칭이 서로 달라 정확한 호칭사용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족 간 호칭에 성차별적 요소가 많다는 지적이 수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어 젊은 부부들을 중심으로 호칭변화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가족 간 호칭에서 남녀 차별적 요소로 지적되는 대표적인 것은 한마디로 시댁 가족은 존댓말로 호칭하지만 처가 가족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여성은 시댁 가족을 부를 때 ‘도련님’,‘서방님’처럼 호칭에 대부분 ‘님’자를 붙이는 데 비해 남성의 처가 가족에 대한 호칭은 ‘처남’, ‘처제’ 등으로 ‘님’자가 없어 호칭 자체가 차별적이라는 비판이다.

또, 남편의 집은 ‘시댁’으로 ‘댁’이 되고 아내의 집은 ‘처가’로 ‘가’가 되는 것에도 알게 모르게 차별적 인식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도련님’과 ‘아가씨’란 호칭에는 아내들의 거부감이 훨씬 더 크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남편의 결혼하지 않은 동생은 ‘도련님’또는 ‘아가씨’로 부르고, 아내 동생은 ‘처남’또는 ‘처제’로 부른다. 한쪽은 존칭이고 다른 쪽은 그렇지 않다. 아내 입장에서는 남편은 자신의 동생들을 ‘님’자 없이 불러도 되고 자신은 남편 동생들을 존대해서 부르는 호칭 자체가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면서 젊은 부부들 사이에는 양성 평등한 새로운 가족 호칭사용이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장인’과 ‘장모’는 거의 쓰지 않고 ‘아버님’,‘어머님’으로 시댁 부모와 똑같이 부른다.

또, 남편이나 아내의 동생을 ‘도련님’이나 ‘처남’으로 부르지 않고 동생들의 이름을 넣어 ‘ㅇㅇ야!’또는 ‘ㅇㅇ씨!’로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남편 동생이든 아내 동생이든 다 같은 동생인데 다르게 부르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고 꼬집는다. 이와 관련해서는 국립국어원도 최근에는 전통적인 호칭 대신에 ‘이름을 불러도 된다’는 입장이다.

요즘 부부들은 또, ‘친가’와 ‘외가’라는 말에도 민감하다. 친가와 외가의 개념 속에도 결국 남녀의 차별적 인식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친가가 외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중시되거나 우대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와 구별은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친손자’와 ‘외손자’를 구별하게 되고 결국 차별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친가’와 ‘외가’, ‘친할머니’나 ‘외할머니’로 구별하기보다는 부모들이 사는 곳을 기준으로 자연스럽게 호칭하게 한다. 부모가 대구에 살면 ‘대구 할머니’나 ‘대구 할아버지댁’으로, 서울에 살면 ‘서울 할아버지’또는 ‘서울 할머니댁’으로 부르는 식이다.

호칭의 변화는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부모들이 젊은 사위나 며느리를 부를 때 ‘며느리’,‘사위’,‘ㅇㅇ서방’하는 호칭은 거의 사라지고 지금은 이름을 직접 부르는 집이 늘고 있다. 핵가족이 되면서 집집마다 식구가 적어 며느리나 사위를 자식과 똑같이 여기려는 부모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호칭 변화를 두고 전통 예의범절이 통째로 무너지고 있다고 통탄하는 쪽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이란 결국 시대와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어서 변화는 있을 수밖에 없다.

설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 때문에 예년 같은 설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족들을 만나는 설렘은 마찬가지다. 이번 설은 서로 듣기 좋고 들어서 기분을 더 좋게 하는 성 평등한 새 호칭으로 가족들을 불러보면 어떨까? 더 기쁜 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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