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바나나.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바나나를 오전과 오후로 나눈다
바나나를 밤과 낮으로 나눈다
바나나를 동쪽과 서쪽으로, 만남과 사소한 이별로, 여자의 저녁과 남자로
나눈다
바나나로 세계를 나눈다
불안해지는 바나나
드디어 생선이 되는 바나나
왼쪽 바나나가 사라지고
바나나의 미래가 사라졌다
아 바나나 하고 웃는 바나나
바나나
네가 있는 곳을 알려줘


<감상> 인간은 사물을 명명(命名)하여 개념으로 고착시켜 버린다. 원래 사물은 기표(말소리)와 기의(뜻)로 규정할 수 없고 자유로운 상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바나나도 동작 주체로 시간과 공간, 남녀의 만남과 이별, 이 세계를 나눌 수 있는 거다. 바나나 스스로 불안하거나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감정의 세계를 지닐 수 있는 거다. 왼쪽 바나나가 사라지면 오른쪽이 다가오고, 현재 시점에서 과거와 미래까지 순환할 수 있는 거다. 때론 미래가 사라지면 다음 생으로 윤회할 수 있는 거다. 바나나가 초승달로 떠올라 사랑하는 그대의 보조개로 환생했으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걸 들어줘, 바나나야.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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