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전문가 윤리 교과서에 보면 거짓말의 여러 형태 중 하나로 ‘의도적인 기만’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의도적인 기만은 있는 사실을 반대로 진술하는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속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사실을 교묘하게 엮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한 내용에는 거짓이 없는데, 듣는 사람은 엉뚱한 오해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남들에게 정부 주요 부처에서 일한 적이 있는 친구를 언급한 후 “당시 우리가 일을 하다가…”라며 그 친구와의 예전 일화를 소개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 친구가 정부 부처에 있었던 것도, 그 일화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때 말하는 이는 다른 직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우리가 일을 하다가…”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니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도 당시 그 부처에서 같이 일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렇게 불명확한 표현을 쓰거나 사실의 일부를 누락해서 다른 사람의 오해를 일부러 유발하는 것이 의도적인 기만이다.

의도적인 기만은 직접적인 거짓말이 아니지만 사실 더 악랄한 속임이다. 의사소통의 상대방이 스스로 거짓을 만들어내도록 유도하고, 나중에 자신은 거짓을 말한 적이 없노라고 발뺌도 할 수 있다. 이처럼 의도적 기만은 상대방을 속이는 것도 모자라 바보를 만들어 버린다.

우리나라 언론의 제목 장사는 의도적 기만의 끝판왕이다. 인터넷 환경의 극심한 경쟁상황 속에서 독자의 클릭을 이끌어내어 광고료를 높이려는 이른바 ‘낚시’ 제목이 기승을 부린다. 기사의 제목이 내용을 전혀 반영하지도 않고, 정작 기사 내용은 허탈할 정도다. “10대 자녀 방에 들어가니... 충격!” 같은 제목을 클릭하면 내용은 “자녀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는 식이다. 해당 사건의 연도나 일어난 장소를 제목에 넣지 않는 속임수도 있다. 과거에 일어났거나 외국에서 일어난 일을 지금 여기서 일어난 것으로 오해하도록 제목을 만드는 것이다.

진영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교묘하게 왜곡하는 일은 선거를 앞두고 더 고약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백신의 안정성에 대한 근거 없는 불안을 부추기거나, 부동산 투기 관련 의혹을 제시하면서 시기, 장소, 주체, 맥락이 다른 사건을 마치 누군가의 엄청난 부정의 결과인 양 보이게 만드는 제목들이 많다. 기사를 읽으면 오해를 피할 수 있다 할지 모르나, 의도를 가지고 만든 제목의 영향력은 의외로 크다. 정보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제목만 얼핏 보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고, 강렬한 제목 때문에 기사 내용을 오독할 수도 있다.

이런저런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고 사태의 진실을 파악하며 민심의 동향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그런데 언론이 제목 장사를 하면서 오히려 검증되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고 민심을 왜곡하는 형국이다. 언론개혁을 한다지만 이런 장난질에는 속수무책이다. 그렇지 않아도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사회의 중요한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데, 기사 제목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해서 처벌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 시민의 소양과 자본주의의 원칙, 그리고 언론인들의 남은 자존심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제목으로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이들을 막으려면 호기심을 돋우는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들과 상습적으로 그런 짓을 하는 언론사의 기사를 아예 클릭하지 않아야 한다. 언론사가 광고를 수주하는 방식도 개선해야 제목 장사의 유혹을 막을 수 있다. 무엇보다 언론사 사주와 언론인이 일말의 양심과 상식, 최소한의 자존심이라도 지켜야 개선이 가능하다. ‘정론직필’ 같은 건 언감생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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