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탓하는 말도 버릇이다. 사소한 일이든 큰일이든 남 탓을 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남 탓하기도 점점 잦아진다. 모든 원인을 자신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만 찾으려고 한다. 그렇다 보니 감사나 은혜보다는 원망이나 탓이 늘어나고 말끝마다 ‘~때문에’를 입에 달고 산다.

이들은 집안에서도 무슨 일이 생겼다 하면 흔히 ‘부모나 가족 때문에’라고 탓을 돌린다. 부부 사이에서도 잘못된 일은 모두 ‘당신 때문’이라고 퍼붓는다. 아니면 ‘시댁 때문’ 또는 ‘처가 때문’이라고 몰아세운다. 직장에서도 잘못된 일은 ‘거래선 때문에’ 또는 ‘부하나 상사가 잘못하고 미숙한 때문’이라고 떠넘기기에 바쁘다.

사람들은 누구나 문제가 발생하면 그 원인과 이유부터 찾으려고 하는 원초적 심리구조를 가지고 있다.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원인과 이유를 알아야 방어도 할 수 있고 대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인 찾기는 마치 자동시스템처럼 바로 작동된다.

문제는 사회가 복잡하지 않았을 때는 어떤 상황이든 원인 찾기가 쉬웠으나 복잡해진 지금은 원인을 찾기도 알아내기도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이렇다 보니 상황이 발생하면 우선 상대방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먼저 탓을 돌려놓고 보자는 심리가 더 확산하는지도 모르겠다.

심리전문가들은 남 탓하는 말을 버릇처럼 하는 사람은 이기적 자기애가 강한 동시에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두려움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또, 자기 정체성이나 자기 확신이 부족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치유되지 못한 어린 시절 수치심의 상처 등을 가지고 있다고도 말한다. 이러한 상처나 문제 때문에 일이 생기면 모면하고 방어하려는 심리부터 먼저 작동해 모든 원인을 남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때문에’를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은 또, 대체로 미래보다는 과거 지향적인 경우가 많다. 지나간 기억들을 총동원하며 주변에 대한 탓할 거리들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레코드판을 돌리듯 반복하기도 한다.

“너 때문에 늘 문제야!”, “당신 때문에 우리가 욕먹잖아!”, “너가 그때 그렇게만 안 했어도”, “당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이런 말들을 버릇처럼 반복하다 보면 실제로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고 상대나 다른 사람들이 모든 원인 제공자인 것처럼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탓하는 말이 점점 더해진다.

이런 사람들치고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꼼꼼히 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기 허물은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주변에 대한 탓하는 말만 하다 보니 하는 일마다 잘 될 리도 없다. 인간관계 또한 좋아질 수가 없다. 결국 ‘~때문에’로 인해 스스로 외부와 단절 또는 고립을 자초하는 셈이다.

천주교에서는 미사 때마다 양심고백기도를 통해 저마다 가슴을 치며‘내 탓이오’를 세 번씩 반복한다. 모든 탓을 먼저 스스로에게 돌리는 이보다 더 진지하고 아름다운 기도가 없다고 생각한다. 맹자도 무슨 일이 잘못되면 그 원인을 남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찾으라(行有不得者 皆反求諸己)고 경고한다.

어떤 것이든 주어진 상황은 남을 탓한다고 해서 달라지거나 바뀌지 않는다. 자신이 그것을 마주하고 맞닥뜨리며 스스로 감당해 나갈 때 비로소 달라지고 해결도 된다. 그래서 남을 탓하는 말은 또 다른 갈등이나 문제가 될 뿐이지 그것은 결코 어떤 방법도 해결책도 아니다.

‘내로남불’이 세상을 멍들게 하듯 남 탓하는 말도 그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때문에’가 바로 ‘제 눈의 들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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