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익·재무구조 개선' 1일부터 잠점 휴업…"3.3㎡당 1억 매각 가닥"
1969년 개점…주식 상장 2년만에 국내 100대 우랑기업으로 급성장
지역 상권 중심축으로 자리매김…유통 대기업 경쟁서 밀려 '적자의 늪'

전국 유일의 향토백화점인 대구백화점 본점이 오는 7월1일 영업을 중단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대구백화점은 잠정 휴점한 뒤 같은 달 중순까지 건물 내 시설과 직원 철수, 단전·단수 등 건물 비우기 절차를 마칠 계획이다. 잠정 휴점을 하루 앞둔 30일 대구 중구 대구백화점 본점에서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박영제기자 yj56@kyongbuk.com

일제강점기 시절인 1944년 대구 중구 삼덕동 구멍가게인 대구상회를 모체로 78년 전통을 이어온 대구백화점의 본점이 52년의 동성로 시대를 끝맺는다. 만성적자에 시달리다 손익·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7월 1일부터 잠정 휴업을 택했는데, 사실상 폐점이다. 대구백화점 관계자는 “3.3㎡ 당 1억 원 정도에 달하는 6611㎡(약 2000평)의 본점을 매각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며 “본점의 문을 다시 열기는 어렵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1969년 12월 26일 동성로 2가 174번지에 10층짜리 고층건물로 들어선 대구백화점 본점은 당시 대구역과 북성로, 교동을 중심으로 발달한 상권의 축을 바꿔놓기도 했다. ‘대백 앞’, ‘대백 남문’ 등 대구시민의 만남의 장소로도 널리 알려진 대구백화점 본점의 지난 발자취를 돌아봤다.
 

1969년 12월 26일 대구 동성로에 문을 연 대구백화점 본점 개점을 알리는 광고. 대백 50년사.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백화점.

대구백화점 창업주 고 구본흥 회장은 1966년 대구백화점 본점 설계를 완성하고,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백화점 짓기 대장정에 돌입했다. 중소업체가 시공하면서 주변 주택이 무너지는 사고가 나 시공사를 바꾼 데다 부족한 공사비 마련도 힘들었다. 1969년 봄에 개점하기로 한 것이 추석에서 크리스마스까지 미뤄졌고, 임대보증금을 미리 내고 개점일을 손꼽아 기다리던 임대업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그해 12월 26일 우여곡절 끝에 지역 최초의 대형백화점이 탄생했다.

개점에 앞서 9월 13일부터 30일까지 백화점 상호현상공모도 했는데,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따온 ‘티파니’라는 상호 응모작을 놓고 경영진이 고심했다. 다방이나 주점 등지에서 사용하던 상호를 백화점에 갖다 붙이기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신입사원 첫 공개채용도 진행했는데, 1000여 명의 지원자 중에 겨우 30여 명만 입사할 수 있었다.

대구백화점은 개점 기념으로 1969년 12월 26일부터 이듬해 2월 5일까지 ‘선물부 대특매’ 행사를 진행했고, 500원 매상마다 플라스틱 용기를 선물로 준 데 이어 텔레비전을 경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지역 상점가에서 소비자들에게 선물을 증정한다는 자체가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는데, 신세계백화점 기획실장으로 근무하다 대구백화점으로 옮긴 권갑수씨의 아이디어였다.

한강 이남 최초로 정찰제도 도입했다. 1969년 12월 26일 자 지역신문에는 ‘모범적인 정찰제로 염가봉사, 상냥하고 부드러운 서비스, 쾌적하게 따사로운 난방시설, 쉬임없이 봉사하는 엘레베터’라는 문구의 광고를 싣기도 했다. 대구백화점 관계자는 “재래시장에서 에누리와 바가지에 시달린 소비자들에게 정찰제는 백화점에 대한 믿음을 다소 줬지만, 물건값을 흥정하는 등의 습관이 몸에 밴 소비자들 중에는 포장지값을 물건 값에서 빼달라고 항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1977년 4월 20일에는 대구백화점에는 맥심 나이트 클럽이 입점하기도 했다. 맥심 나이트 직원들은 백화점 신용카드가 생겼을 때 적극적으로 회원가입을 해주기도 했다.
 

1969년 12월 26일 대구 동성로에 문을 연 대구백화점 본점 전경. 대백50년사.

△부도설 극복하고 신세계백화점을 누르다

1970년 9월 22일 자 지역 신문에는 대구백화점의 경영권이 재벌그룹에 넘어갔다는 기사가 실렸다. 오보로 판명 났지만, 부족한 공사대금 마련을 위해 도움을 줬던 사채업자들이 몰려와 환금을 요구하면서 백화점이 아수라장이 됐다. 오보로 시작된 ‘대백 부도설’은 엄청난 충격을 줬고, 경영 정상화에는 2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최초의 직영백화점인 신세계백화점도 위협적이었다. 1973년 8월 25일 대구백화점 근처에 있던 한도백화점을 인수하면서 대구에 지점을 냈고, 부산의 2배에 달하는 1인당 연간 소매 구매액을 자랑하는 대구 상권 공략에 나섰다. 대구백화점은 1974년 창업 30주년 기념행사로 대응했고, ‘대구의 돈은 대구은행으로’라는 캠페인과 함께 ‘대구시민의 쇼핑은 대구백화점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지역민의 애향심에 호소했다. 여기에다 리뉴얼 작업과 더불어 에스켈레이터 설치, 직원 급여 인상 등으로 응수했다. 1976년 12월 신세계백화점 대구지점은 출점 3년 4개월 만에 계속되는 적자영업을 극복하지 못하고 철수했다. 지역 유통업계 관계자는 “40년 만인 2016년 12월 15일 개장한 대구신세계백화점이 지역 유통업계 최강자로 자리매김하면서 대구백화점이 적자에서 헤어나질 못하게 됐는데, 운명의 장난과도 같다”며 “40년 전과 상황이 완전히 바뀐 셈”이라고 했다.

△ 국내 100대 우량기업→적자의 늪.

구본흥 회장은 1984년 3월 20일 상공의 날에 전국 유통업계 최초로 은탄산업훈장을 받았다. 유통업계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서다.

1988년 9월 14일 지역 최초의 유통업체로서 기업공개를 실시했는데 매출이 급격하게 늘었다. 1990년 총매출이 1600억 원에 이르렀고, 주식 상장 2년 만에 60%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당시 한국능률협회가 금융보험 및 관리대상 업체를 제외한 국내 562개 상장기업의 1990년 결산자료를 바탕으로 선정한 100대 우량기업에 전국 유통업체 중 유일하게 대구백화점이 84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대구백화점은 1993년 9월 15일 한강 이남 최대규모인 프라자점의 문을 열었고, 대구지역 최초의 지하철과 연계된 지역밀착형 복합쇼핑몰 성격의 백화점인 대구백화점 상인점 건립에도 나섰다. 그런데 1995년 4월 28일 상인점 지하 터파기 공사 중이던 업체 과실로 가스 폭발 사고가 발생하면서 대구백화점 상인점 개점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지금의 현실은 초라하기만 하다. 종속회사를 포함한 (주)대구백화점의 지난해 영업수익(매출액)은 911억900여만 원으로 매출원가와 판매비 및 관리비를 빼면 175억5400여만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18년 사상 최악의 영업손실인 144억 원을 훌쩍 넘은 수준이다. 2019년 영업수익은 1014억8400여만 원, 영업손실은 142억3900여만 원이다. 지난해 당기순손실도 178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백화점 자체를 놓고 보면 지난해 영업손실은 190억5700여만 원, 당기순손실은 147억3700여만 원에 달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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