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지중해는 지구상 제일 아름다운 바다로 꼽힌다. 파란 하늘과 쪽빛 물결이 환상을 이루는 로맨틱 휴양지. 그 풍광에 반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리스 미코노스섬에서 장편소설 ‘상실의 시대’를 썼다. 파도가 잔잔해 항해가 수월했고 온화한 기후는 동식물 성장에 적합했다.

또한 유럽·아프리카·아시아 대륙에 둘러싸인 해양 요충지. 서쪽은 지브롤터 해협으로 대서양과 연결되고 동쪽은 수에즈 운하를 거쳐 인도양으로 통한다. 북쪽은 흑해와 만난다. 오랜 옛적엔 지중해와 대서양 길목이 없었다. 육지로 막혔다는 의미. 500만 년쯤 전에 스페인과 모로코 사이에 지브롤터 해협이 생기면서 대양과 이어졌다. 이후 인류는 지중해 연변에 살기 시작했다.

아드리아해는 지중해 북부에 자리한다. 이곳 베네치아는 수백만 말뚝으로 습지를 메워 만든 인공섬. 본토와 다리로 잇닿은 118개 도서로 이뤄졌다. 차량 운행이 금지돼 수상 버스와 수상 택시로 이동한다. 요컨대 보행자 천국인 셈이다.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로 불린다. 거미줄 운하 사이로 줄무늬 복장 사공이 칸초네를 부르며 곤돌라를 다루는 풍경은 이국적 표상이다. 유리공예는 시리아 기술을 도입한 특산품. 오래전 산마르코 광장 인근 상점에서 파란빛 유리 올빼미 소품을 샀다. 가끔은 녀석의 동그란 눈을 보면서 회상에 잠긴다.

과거 베네치아는 무역으로 번성한 공화국. 대문호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은 베네치아 상인들 부를 반영한다. 7세기에 시민들은 국가 원수인 도제를 선출했고 19세기까지 존속한 공화정 도시국가. 오늘날 곤돌라 선체는 검은색이다. 베네치아 정부는 곤돌라 장식 사치를 막고자 덮개를 검은 모직만 쓰도록 조치했다. 이에 따라 몸체를 검게 칠했고 법령이 폐지됐으나 그대로 유지됐다.

지중해 동부 에게해는 고대 그리스 문명 발상지로 수많은 도서가 산재한 다도해. 영화 ‘나바론 요새’는 그곳 섬들을 무대로 펼쳐진다. 케로스섬에 고립된 영국군을 구출하고자 근처 나바론섬에 설치된 독일군 거포를 폭파하는 특공대 활약을 그렸다. 암벽을 오르는 여섯 명의 대원들 사투가 압권이다. 제주 해협 추자도엔 그 장면을 본뜬 일명 ‘나바론 하늘길’이 조성됐다.

나폴리만 입구 카프리섬은 ‘지중해의 보석’이라 묘사된다. 로마제국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취득한 사유지. 단애로 에워싸이고 모래밭도 전혀 없는 곳으로 부호들 별장이 즐비하다. 오직 섬의 북부에 항구가 있을 뿐이다. 동쪽 벼랑 위에 티베리우스 황제 별장인 ‘빌라 요비스’ 유적이 남았다.

19세기 역사학자 몸젠은 ‘로마사’를 집필해 독일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는 이례적인 수상으로 그 저작이 인문학적 교양서란 사실을 보여준다. 로마의 금석학을 이끌 정도로 고고학에 통달한 석학.

역사의 매력은 실제 벌어졌던 사건이 대상인 점이다. 한데 기록은 자의든 타의든 임의로 조작된 사례가 많다. 그런 엉터리 역사는 진실을 왜곡한다. 로마제국 티베리우스 황제가 일례다. 당대 뛰어난 역사가 타키투스는 그의 악행을 까발렸고 이를 신뢰한 후세는 그를 형편없는 인물로 평했다. 몸젠은 방대한 금석문 연구로 이를 뒤집는다. 티베리우스는 로마가 가진 아주 훌륭한 황제였다고. 그것은 인류 생활을 바꾼 발명에 버금가는 위업이 아닐까. 누군가 인생을 바꾼 탓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