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경주를 사랑하는 ‘계림역사기행’ 모임에서 문무대왕릉 지구를 답사했다. 답사 중 대종천(大鐘川)과 감은사지와 이견대에서 생각의 나래를 많이 펼쳤다.

대종천은 토함산 장항리에서 발원하여 감은사지를 지나 이견대가 있는 언덕 아래로 흐르는 하천이다. 몽골이 황룡사의 대종(49만근)을 가져가려 배에 싣고 이 하천을 지나 바다에 띄우다 폭풍우에 가라앉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동해천으로 되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전해 오는 이야기를 따라 대종천이라 한 것 같다. 식민사관의 결과라고 동해천(東海川)으로 바꾸어 부르자는 사람도 있다.

감은사지는 신라 30대 문무대왕이 왜구의 상륙지점인 동해구(東海口)에 부처의 힘을 빌려 적을 막겠다는 뜻으로 국찰(國刹)을 착공하였다. 절 이름은 진호국가(鎭護國家)의 의미, 왜구를 물리치려는 욕진왜병(欲鎭倭兵)의 의미로 진국사라 하였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재위 21년 56세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31대 신문왕이 유지를 받들어 절을 완공하고 이름을 감은사로 바꾸었다. 사후에도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부왕의 명복을 비는 의미가 담긴 이름이다. 용이 된 부왕(父王)이 드나들 수 있게 금당 밑에 바다와 연결하여 용혈(龍穴)을 만든 신문왕의 효심도 놀랍지만, 호국 의지가 참으로 놀랍다.

감은사지는 쌍탑식가람 배치에 양 탑의 중앙부 뒤편에 금당 터와 회랑이 확인되었다. 금당의 바닥구조가 H자형의 받침석과 보를 돌다리처럼 만들고, 그 위에 직사각형의 석재 유구를 깔아 우물마루 모양이라고 한다. 장대석에 변화와 창조의 태극 문양이 보인다.

절터에는 국보 제112호 삼층석탑 2기가 있다. 찰주의 높이까지 현존 석탑 중 가장 큰 것이며, 고선사지 삼층석탑, 나원리 5층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탑 양식이다. 서탑에서 뚜껑이 보련형(寶輦型)으로 된 사리함(보물 366호)이 발견되었고, 동탑 사리함에서는 사리 10여 과가 나왔다. 서탑의 사리를 진신 사리, 동탑의 사리는 문무왕의 사리로 추정하기도 한다.

감은사지를 지나 바다가 보이는 대본리 언덕에 오르면 이견대가 있다. 넓은 바다가 시원스럽다. 문무대왕의 수중릉인 대왕암이 바라다보인다. 이견대(利見臺)는 용이 된 문무대왕을 만나 나라에 이롭다는 뜻과 함께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利見大人)이라는 주역의 괘사에서 따온 이름이라 한다.

세상에는 용이 되고 싶은 사람이 많다.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물속에 숨어있는 용은 잠룡이다. 잠룡이 모두 비룡이 되는 건 아니다. 잠룡 시절을 슬기롭게 보낸 자만이 비룡(飛龍)으로 승천(昇天)할 수 있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근신해야 한다. 잠룡물용(潛龍勿用)이라 했다.

근신하여 힘을 기른 뒤 서서히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 모든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 정도로 끊임없이 연마해야 한다. 자강불식(自强不息)이다. 실력이 쌓이면 도약하여 비룡(飛龍)이 되어야 한다. 좌고우면으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비룡이 되었으면 대인을 만나는 것이 유익하다.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이다. 세종대왕은 황희를 영의정, 문신인 김종서를 장군으로, 노비 출신 장영실을 으뜸 과학자로 등용하여 문화의 꽃을 피우지 않았는가.

비룡 다음 단계는 항룡유회(亢龍有悔)다. 너무 높이 날아오른 용은 후회한다. 밀랍 날개를 달고 날아오른 이카로스는 너무 높이 날다가 한순간에 추락했다. 욕심은 금물이다.

잠룡이니 용이니 하는 사람들, 용이 되려고 하거들랑 문무대왕 같은 용이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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