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영화평론가·국제펜문학회 회장

2022년 노벨문학상은 프랑스의 소설가 아니 에르노(Annie Ernaud, 1940~ )에게 돌아갔다. 역대 수상자 119명 가운데 여성으로서는 17번째이며 프랑스 여성으로서는 처음이다. 프랑스는 1901년 러시아의 대문호 레흐 톨스토이를 따돌리고 자국 시인 쉴리 프뤼돔이 제1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 최다 수상자 국가가 됐다(16명). 아니 에르노는 202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여류시인 루이즈 글릭보다도 세 살 더 많다. 올해 82세의 아니 에르노는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던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 중의 한 명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20편 정도의 작품이 번역돼 있다. 그녀는 자신의 체험을 중심으로 작품을 쓰는 작가로 유명한데, 자신이 직접 겪은 진실만을 쓰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해 왔다. 소설 ‘빈 옷장’(1974)으로 등단했으며, ‘그들의 말 혹은 침묵’(1977), ‘얼어붙은 여자’(1981) 등 자전적 작품들이 줄을 이었다. 2008년 ‘세월’(Les Annees>로 마르그리트 뒤라스 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수많은 문학상을 받았으며, 2003년에는 아예 자신의 이름으로 된 ‘아니 에르노’문학상이 제정되기도 할 만큼 문단에서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녀는 사춘기 때 숲속 여름학교에서 첫 번째 경험했던 섹스, 1960년 영국 런던에서 보모(Au pair)로 알바를 한 뒤 귀국후 대학 재학중 원치않은 임신으로 당시는 불법이던 낙태를 한 경험, 유명 작가가 된 후 소련대사관에 근무하던 연하 유부남과의 내연 관계, 헤어진 연인에 대한 집착 등 적나라한 고백들이 그녀의 작품 속에 여과없이 드러나는 소위 ‘문제적 작가’로도 불리웠다. 그러나 결국 승리를 일궜다, 그녀의 개인적인 체험과 기억이 결국은 현대 사회에 대한 통찰에도 연결되고 이를 가장 잘 묘사했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 6일 스웨덴 로얄 아카데미도 그녀가 ‘개인적 기억의 뿌리, 소외됨, 총체적인 억눌림을 공개한 용기와 임상적인 예리함’을 수상의 이유로 들었다.

아니 에르노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역 출신이다. 소도시 릴본에서 아니 뒤셰슨(Annie Duchesne)으로 태어나서 인근 이브토에서 카페 겸 음식점을 운영하던 부모님 슬하에서 성장했으며, 내세울 것 없는 집안 출신이라는 열등감에 잠겨 있었다, 에르노는 1964년 결혼하고 1985년 이혼한 전 남편 필립의 성씨이며 둘 사이에 에릭과 다비드 두 아들이 있다. 아니 에르노는 노르망디에 소재한 루앙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했으며, 중등학교 교사를 거쳐 1971년 현대문학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2000년까지 방송통신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유명작가가 된 뒤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의 작품들은 영화와도 인연이 많다, 우선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전남편이 촬영하고 아니 에르노가 아들 다비드 에르노-브리오가 공동감독한 다큐멘터리 홈비디오 영화 ‘슈퍼 에이트 데이즈’가 상영되기도 했다. 작가 자신은 내레이션도 담당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봉준호 감독이 개막을 선포하고 심사위원장이 돼 시상까지 한 2021년 베니스 영화제 대상(황금사자상)을 차지한 ‘레벤느망’ (L‘Evenement)을 들지 않을 수 없다, 2000년 작 동명 소설이 원작이고 오드리 디완이 감독했다. 2022년 3월 국내에서도 같은 프랑스어 제목으로 상영됐는데, 영어 제목은 ‘Happening’. 즉, ‘해프닝’이었다.

아니 에르노는 여성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겠다고 한다. 또한 좋은 작품을 남기기 위해서는 먼저 다독할 것, 그리고 글을 잘 쓰려고 애쓰기보다는 정직하게 쓰기를 권유하고 있다. 젊은 작가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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