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일 편집국 부국장
곽성일 편집국 부국장

포항지역에 엄청난 피해를 남긴 태풍 힌남노가 지나간 지 한 달여가 됐다.

힌남노가 포항에 엄청난 비를 쏟아붓던 그 날, 영일만은 밤새 울었다.

짙푸른 영일만에 거대한 황토물이 들이닥쳤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엄청난 비가 내린 형산강과 냉천은 빗물을 감당하지 못해 밤새 큰 물줄기를 이뤄 영일만으로 내려보내기에 바빴다.

평소 서로 맞손을 잡으면 수 천 년 지기였던 영일만과 냉천· 형산강이 불편해지는 순간이었다.

냉천과 형산강이 제 살려고 한꺼번에 많은 황토물을 내려보내는 것을 본 영일만은 순간 분노했다. 사전 통보도 없이 야심한 시간에 물을 흘려보낸 것이다.

사상 유례없는 폭우가 쏟아진 포항시 오천읍을 가로지르는 냉천의 상황은 심각했다.

평소 수량이 적어 건천(乾川)인 냉천은 엄청난 폭우로 불어난 물을 영일만으로 내려보내기에 급급했다. 물의 양이 많아 영일만으로 흘러가는 속도가 느려지면서 범람했다. 강물은 예전 물길이었던 포스코 방향으로 넘쳐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안겼다.

이처럼 엄청난 물이 갑자기 닥치자, 영일만은 폭우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이해하기에는 상황이 급박했다.

바다는 한꺼번에 많은 양의 민물이 들어오면 염분 함량이 낮아져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바다는 빈혈로 비틀거리게 된다. 그 영향으로 물고기와 미역 등 해초들도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된다. 그래서 바다는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민물 포용이 가능하다.

상황이 위급해지면 바다는 황토물을 강으로 밀어낸다. 바닷물 역류 현상이다.

이번은 상황이 달랐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상을 초월하는 강물이 밀려와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일만이 몸집을 물리는 밀물 때여서 더더욱 여유 공간이 부족했다.

사정없이 내려오는 강물은 온갖 쓰레기도 함께 몰고 왔다.

강물을 받아들이기엔 포화상태에 이른 영일만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다. 어떠할 수 없이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며 해안가로 황토물과 쓰레기를 토해냈다. 성난 파도라고 하면 안 된다. 바다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밤새 속울음만 바다에 가득했다.

영일만은 밤새 힘들게 토해 내면서도 결코 냉천과 형산강을 원망하지 않았다.

이 고충스런 순간이 지나면 예전과 같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서로를 기쁘게 하는 화안시(和顔施) 보시를 할 수 있기에 말이다.

형산강·냉천과 영일만의 약속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왔다.

물론 이번 힌남노 태풍과 같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을 자주 경험했다. 그래서 원망을 하지 않는다.

태풍이 지나간 영일만과 형산강 머리 위에는 높고도 푸른 가을 하늘이 내려보고 있기 때문이다.

태풍이 몰아친 지 한 달이 지난 영일만과 형산강의 빛깔은 더없이 푸르다.

냉천은 예전과 같이 물길은 가늘게 이어지고 있다. 격랑의 강이었던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강물과 바닷물이 다시 푸름을 되찾았다.

인명 피해로 가족을 떠나보낸 유가족과 집이 침수돼 삶의 공간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의 가슴에도 일상의 행복이 찾아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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