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종종 논픽션은 픽션보다도 묵직한 반향을 일으킨다. 구체적 사실을 통해 진실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가 데이비스는 ‘미국을 들썩인 여섯 권의 책’을 꼽았다. 흑인 노예들 참상을 고발한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제외한 5권이 실화. 그중 두 권은 핵과 관련된 르포다.

퓰리처상 수상자 허시가 기록한 ‘히로시마’는 원폭 투하 8개월 후에 현장을 누비며, 생존자 여섯 명이 겪은 절체절명 순간을 정리했다. 이 책은 반핵운동의 지평을 열었다. 벨라루스 노벨문학상 작가인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의 목소리’로 원전 사태의 참극을 알렸다. 이는 20세기 최대 재앙으로 일컫는다. 장장 10년에 걸쳐 100명 넘는 사고 경험자를 인터뷰한 역작.

핵은 두 얼굴의 야누스 같은 물질. 환경을 지키는 청정에너지인가 하면 가공할 살상 병기로 둔갑하기도 한다. 물론 어느 쪽이든 인간의 선택일 뿐이다. 한데 사람은 실수하는 동물이기에 예기치 못한 사고 확률은 상존한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었다. 1983년 모스크바 핵전쟁사령부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 5기를 발사했다는 경보가 울린 탓이다. 당직 장교인 페트로프는 컴퓨터 오류로 여겨진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결국 첩보위성이 햇빛 반사 현상을 잘못 해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치열한 냉전 국면에서 그의 판단은 우발적 핵전쟁을 막아 세계를 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핵무기 사고도 있었다. 미국은 그린란드 툴레에 핵무기를 배치하고, 소련의 공격에 대비한 비상대기 훈련을 수행했다. 1968년 핵무기 탑재 B­52 폭격기가 군기지 근교에 추락했고 기체는 해빙을 뚫고 들어가 흩어졌다. 다행히 핵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구밀도가 희박한 지역이라 피해도 적었다.

1945년 미국은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 제조에 성공했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됐다. 먼저 독일이 선점할 것을 우려한 조치. 물리학자 오펜하이머가 책임을 맡은 ‘맨해튼 계획’은 극비리 진행돼 핵무기가 개발됐다.

원자폭탄은 미국의 산업기술과 도덕심이 응축된 결과물. 맨해튼 계획 참여자는 히틀러가 먼저 발명할까 두려워했다. 자유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다는 공포심. 물론 그 선의는 일본 원폭 투하로 인해 오펜하이머의 자괴감처럼 피로 물들었다. 핵무기를 만드는 작업과 원자력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은 원리가 비슷하다. 한국도 핵무장이 가능하단 의미다.

유엔(UN)은 핵무기 압박 와중에 탄생했다. 지역 규모 전쟁을 막진 못했으나 제3차 세계대전을 예방하는 역할은 완수했다. 한데 작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상임이사국인 러시아 횡포로 유엔이 무력화되는 상황. 수세에 몰린 러시아는 핵공격 암시 발언으로 지구촌을 긴장시킨다.

만약 우크라이나도 핵을 가졌다면 전쟁 양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새삼 ‘핵 억지 전략’이 떠오른다. 북한핵 협박에 직면한 한국도 마찬가지. 사견을 전제로 홍준표 대구시장이 주장하는 전술핵 배치나 핵무장은 일견 타당성을 갖는다. 우크라이나 전황을 보면서 느끼는 타산지석.

비틀스 멤버인 존 레논이 작사 작곡한 ‘이매진’은 대표적 반전 음악.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산다고 생각해보라는 시적인 가사는 잔잔한 여운을 담았다. 근래에 그의 아들이 우크라이나 비극을 알리고자 아버지 노래를 불렀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