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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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면 남자는 달을 줍는다
오래전부터 혼자 사는 남자는
사진 박는 것이 직업이다
가로등 아래 골판지 달 맥주병 달
자전거에 싣고 온 달들을 둘둘 말아
마루에서 안방까지 차곡차곡 쌓았다
월식의 밤, 열일곱 살 딸이 집을 나가자
달 칼라 현상소 간판 붙이고 사진관을 열었다
달이라는 말과 현상한다는 말이 좋았다
한 장의 사진에 밤하늘을 박아 팔고 싶어
달을 표적 삼아 카메라를 들이댄다
인화지에 찍혀 나오는 사진 한 장에서
달의 얼굴들을 아랫목에 말린다
디지털로 바뀐 지가 언제인데
코닥필름 회사 망한 지가 언제인데
아날로그 필름만을 고집하는 달 칼라 현상소 남자
자꾸만 얼굴을 바꾸는 달을 좇는다
그의 앞마당에 쌓인 폐품들이
달의 얼굴로 처마에 닿아 간다
더 벗을 것도 없는 달, 고무대야 속에 담겨 있다
사진관 남자는 껍질뿐인 까만 얼굴
달빛에 물들라고 단단하게 비비고 있다

<감상> “오래전부터 혼자 사는 남자”의 집에는 술병, 담배꽁초, 약봉지, 복권, 이력서 등이 꼭 등장한다. 텅 빈 냉장고도 단골이다. 먹다 남은 인스턴트 음식이 싱크대에 쌓여있고, 달력은 길을 잃은 지 오래다. 남자에게 “달 칼라 현상소 사진관”은 희망의 마지노선이다. 남자의 “아날로그 필름” 고집이 계속되길 바란다. 가수 임창정이 그랬다. “행복은 생각보다 멍청하다. 웃는 사람만 따라다닌다. 무조건 웃자. 표정이 바뀐다.” 앞으로도 혼자 사는 사람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외로운 죽음이 없도록 혼자 사는 사람들의 소통, 연대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달 칼라 현상소 사진관”에 자주 모였으면 좋겠다. <시인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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