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앉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감상> 30년 된 친구가 있다. 가끔 만나 소주잔을 기울인다. 서로 별말이 없다. 그래도 어색하지 않다. “슬며시” 서로 할 일을 하고 “말없이” 잔을 채우고 부딪힌다. 아름다운 삶이란 이런 조용한 일들의 합일 것이다.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가는 일, 잠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는 일, 찬 바람이 불면 슬그머니 립밤이나 핫팩을 건네는 일, 양치하다가 혼자 씩 웃는 일, 그냥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 일, 그냥, 그냥……. 이런 “그냥”들이 참으로 “고맙다/ 실은 이런 것들이 고마운 일이다” <시인 김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