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경북일보 청송 객주 문학대전 시 은상

김미향 약력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평택생태시문학상 대상

오후와 저녁의 경계에 서 있는 나는 이미 자정을 향해 있는 듯하다. 문득 하루 종일 지나왔던 시간들이 모두 백지가 된 것 같다. 시간의 마디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지금, 내가 서 있고자 했던 위치에서 나는 얼마만큼 어긋나 있는지 생각해본다. 문득 내가 낯설게만 느껴질 때가 있다. 내 안에 만연해 있는 어수선한 문장들로 나는 온통 내게 고질병처럼 감염되어 있는 것 같다.

내가 가고자 하는 경로에서 나는 지금 나의 어디쯤 통과하고 있는 걸까, 생각해보다가 어쩌면 나로부터 너무 멀리 지나쳐 온 것은 아닌지 뒤돌아본다. 뒤안길이 아득하다. 가끔 하나의 문장에 온종일 얽매었던 기억들만 생생하다. 매일 다니던 아파트와 가로수와 운동장과 교실과,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생각하다가 백지가 되어 있는 게 다인 상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때가 무엇인가 습작 중이라는 듯 또렷해지는 것도 같다.

오래 끄적이던 문장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쓰는 시간보다 썼다 지우는 시간이 더 길다. 내가 나에게 새삼스러운 것은 빈칸이 너무 많다는 것뿐. 그 빈칸들을 오롯이 모아 행을 만들고 연을 만들다 보니 빼곡해진 뼈대들을 끌어안고 자는 시간이 내 유일의 기쁨이 될 때가 있었다. 아직 두 발로 걷기에는 부족해서 엉금엉금 기는 꿈을 꾸다 깨기 일쑤이지만 가끔 아침이 기다려지는 건 왜일까.

쓰다만 어떤 한 문장으로만 하루를 이틀을, 가득 채울 때가 많다. 그 한계에 있을 때 이어 쓰는 접속어처럼 시의 곁에 함께 있어 주는 문학 동인들이 있어 이 가을이 참 포근하다. 늘 뭉클한 눈빛으로 응원해주는 가족들에게도 감사드리며, 칠흑 같은 터널 속으로만 들어가려 할 때 한 줄기 빛을 밝혀주시고 갈 길을 비춰 주신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조금은 힘들고 설레는 길이지만 늘 정진하며 걸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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