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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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뿐

<감상> 내 인생의 시 한 편을 고르라면, 황지우의 ‘뼈아픈 후회’이다. 감수성 예민하던 고등학교 1학년 때, 하도 읽어서 줄줄 외울 정도였다. 살면서 “나에게 왔던 소중한 사람들이 부서지고 망가진 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가 되는 것은 내가 했던 사랑이 지독한 욕망과 이기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까. 11월은 황지우의 시, ‘뼈아픈 후회’를 읽는 달. <시인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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