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림 안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신호림 안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지역학은 특정 지역의 문화, 역사, 지리, 전통 등에 관한 학문이다. 1990년대까지는 지역보다는 지방이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지방이라는 용어는 ‘수도’ 내지 ‘중앙’과 관련을 맺으며, 수도/非수도, 중앙/지방을 구분하고자 하는 욕망과 그런 구분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욕망 사이에 위치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갈등을 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방보다는 가치중립적인 의미를 가진 지역이라는 용어가 선호되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지역에 대한 다층적인 이해와 사회·문화적 탐구를 위해 마련된 학문 분야가 바로 지역학이라고 할 수 있다.

안동에서도 ‘안동학’이라는 학문이 일찍부터 정립되었다. 1993년 ‘서울학’이 마련된 이후 국내에서 두 번째로 안동학이 출범한 것이다. 2001년부터 안동시와 한국국학진흥원은 안동학 육성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고 그 결과물이 “안동학”이라는 정기 간행물에 집약되었다. 또한 2015년부터는 안동 지역 청년을 대상으로 안동의 문화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안동사랑 청년 캠프’를 시작했으며, 2017년부터는 안동의 전통문화를 주제로 ‘안동문화 100선’ 단행본 발간사업도 진행했다.

하지만 한국국학진흥원은 기본적으로 교육기관이 아닌 연구기관이다. 그래서 안동학의 연구 성과가 안동시민을 포함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안동대학교와 안동시는 2017년 3월 9일에 ‘안동학 교양강좌개설’에 관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안동대학교 내에 ‘안동학’이라는 교양 강좌를 개설해서 학생들에게 안동의 역사와 문화 등을 가르치고, 안동시는 강좌 운영에 필요한 주요 관광지 및 유적지 현장 학습비를 지원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안동시는 안동의 다양한 문화유산과 전통의 가치를 되짚어 보고 미래의 방향성을 모색할 수 있는 교육적 기회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 10월 4일 안동시에서 뜬금없이 안동대학교로 “안동학 교양강좌 개설 지원사업 종료 안내”라는 공문을 보내왔다. 공문의 요지는 그동안 해당 분야의 인력 양성을 성공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에 더 이상 지원 사업이 불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우선, 교양강좌는 특정 분야의 인력 양성에 교육목적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전공강좌’의 몫이다. 그리고 ‘안동학’은 매해 새롭게 입학하는 신입생들이 수강하기 때문에 성공적인 추진 여부와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개설되어야 하는 강좌이다. 안동시가 요청해서 개설했던 강좌였는데, 갑자기 ‘불필요하다’고 하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안동시가 안동학이라는 강좌의 성격과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처음 ‘안동학’이 개설되었을 때 두 학기 동안 이 강좌를 담당한 교수가 현 안동시장인 권기창 씨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안동대학교 한국문화산업전문대학원 교수였던 권기창 씨는 2017년 1학기와 2학기에 이 강좌를 담당하며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의 역사, 자연, 문화, 인물, 전통, 예술, 종교, 음식 등에 관한 다양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습득하여 안동의 지역 정체성을 규명하고 안동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는 교육목표를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시장 후보 시절에는 유튜브 채널 ‘권기창 TV’를 운영하며 끊임없이 안동학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시민들을 위한 안동학 강연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즉, 안동학은 현 시장이 교수 시절 직접 설계하고 담당했던 강좌였으며, 후보 시절 자신의 가장 큰 강점으로 내세웠던 분야였다. 그런데 시장에 당선된 후 시행한 정책 중 하나가 안동학에 대한 지원을 끊는 것이라니, 이율배반(二律背反)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지 않은가!

사실 안동시가 엄청난 액수를 지원한 것도 아니다. 지원 사업비는 매년 천만 원, 한 학기에 오백만 원이 전부였다. 그나마 오백만 원도 모두 수강생의 현장 학습비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결국 안동시의 지원비는 다시 지역으로 환원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안동시는 불필요하다며 안동학을 버렸지만, 안동대학교는 강사법에 의거하여 ‘안동학’ 담당 강사의 교육권을 보장하고, 안동학을 전파할 수 있는 교육적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안동시의 지원과 관계없이 ‘안동학’ 교양강좌를 계속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안동시가 보낸 공문의 마지막 문장은 “앞으로도 시정발전에 많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이다. 일반적으로 공문에 사용되는 상투적인 문구지만, 이 아니 뻔뻔하지 않은가? 오백만 원이 아까워서 지원을 끊으면서 안동시의 발전에는 협조하라니 말이다. 이제 안동시는 더 이상 안동학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길 바란다. 따로 지원이 없어도 지역학으로서의 안동학은 안동대학교에서 그 생명을 이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안동시가 이번 기회를 통해 ‘염치(廉恥)’라는 것이 무엇인지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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