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대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백승대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불과 일주일 사이에 156명이 희생당한 이태원 참사 비극과 아연광산 갱도 붕괴사고로 매몰되었던 2명의 광부가 221시간 만에 구조되는 봉화의 기적이 함께 일어났다. 두 사건 모두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다. 그러기에 희생자 유가족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이 이태원 참사를 접하면서 황망하고 슬픈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던 반면에, 기적 같은 봉화 광부의 생환 소식에는 안도와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지면을 통해 참사 희생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이와 함께 기적같이 살아 돌아온 두 분의 광부들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이태원 참사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고였다. 봉화의 광산 매몰사고 역시 막을 수 없는 사고는 아니었다. 사고 강도나 피해 정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고 모두 우리 사회의 안전에 대한 의식이 여전히 수준 이하임을 보여준 사고였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비롯하여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사고, 세월호 사고 등으로 안전불감증이 우리 사회의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른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안전불감증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안전관리 책임자의 책임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올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법 시행 이전에 비해 중대재해사고는 줄지 않고 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기 직전에도 산업현장에서 중대재해사고가 잇달아 산업안전에 대한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건설현장 추락사망 사고를 비롯하여 7명이 숨진 9월 26일의 대전 현대아울렛 화재사고, 10월 15일 SPC 평택 제빵공장에 일어난 사망사고 등이 이어졌다.

현대사회를 위험사회(risk society)로 규정한 울리히 벡(Urlich Beck)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은 누구나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예컨대 며칠 전에 일어난 용산역 열차탈선사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운송수단에도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이 늘 존재한다. 사고 개연성에도 불구하고 자동차나 철도 같은 운송수단을 관성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사고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목격한 수많은 안전사고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만큼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철저한 안전관리를 위해서는 정교한 안전관리 매뉴얼을 준비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이번 이태원 참사도 주최자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관리 매뉴얼이 제대로 적용되지 못했다. 주최자가 분명한 경우에 적용되는 안전관리 매뉴얼은 있었지만 주최자가 특정되지 않은 경우에 적용되는 안전관리 매뉴얼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전관리의 최우선 목표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여 인명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자면 안전관리 매뉴얼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고를 포괄할 정도로 정교해야 한다. 모든 경우의 수를 찾아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업이다. 따라서 정교한 매뉴얼을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고난도 과제이다. 고난도 과제일수록 ‘대충대충’ 풀어서도 안 되고 ‘얼렁뚱땅’ 풀 수도 없다.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대충대충 혹은 얼렁뚱땅 안전을 관리하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안전관리를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에 자리잡고 있는 ‘대충대충’ 문화는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이번 이태원 참사는 우리 사회가 선진 안전사회로 나아 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참사에 대한 책임 소재는 분명히 밝혀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책임 추궁을 둘러싼 정쟁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책임 추궁에서 한 걸음 나아가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넘어설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사회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태원 참사는 이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참사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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