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지구는 45억 년의 역사를 가졌다. 그 가운데 19세기와 20세기는 압도적 변혁기로 평한다. 사람은 다른 생물종을 통제하면서 환경을 바꾸는 주체가 되었다. 학자들은 홀로세가 끝나고 인류세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이 지배하는 지질시대를 뜻한다. 기후학자 크뤼천이 처음 고안한 용어.

그는 화석연료 급증에 따른 오존층 파괴 과정을 설명해 노벨상을 받았다. 기후가 변화할 조짐을 보일 만큼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한 사실을 입증했다. 인류세는 에너지 혁신으로 시작됐다. 18세기까지 세계는 에너지 부족이 심했다. 대부분 동물과 인간이 제공한 노동력에 의존했다.

화석연료 이전에 사용한 흔하고 강력한 원동력은 말이다. ‘마력’이란 단위가 생길 정도로 산업 전반에 광범위하게 쓰였다. 18세기 중엽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은 역학적 에너지를 생산한 대혁신. 철도와 선박에 활용돼 신산업이 출현했다.

또한 값싼 증기력은 동력의 형태를 바꾸었다. 인간과 동물의 노고는 기계로 대체됐다. 석탄 공급 비용은 식량과 사료에 비해 저렴했기 때문이다. 노역에서 해방된 동물은 새로운 쓰임새로 진화한다. 사람들 일상을 풍요롭게 영위하는 기제가 되었다. 고급 레포츠인 승마는 대표적 사례.

예전에 과천의 서울경마공원에 가서 재미로 마권에 베팅한 경험이 있다. 엄청 오래돼 기억도 가물가물. 마권은 일명 ‘승마투표권’이라고 한다. 일종의 내기나 도박임에도 투표란 말을 붙인 사실이 흥미롭다. 대박을 꿈꾸는 관객이 많았다. 무려 배당금이 13배나 되는 경우도 보았다.

지축이 울리는 듯한 말발굽 소리와 주로에 튀는 흙의 파편과 엎드린 기수들 몸놀림이 경이로웠다. 그것은 스포츠에서 제일 위대한 2분이었다. 나는 소액을 수차례 베팅해 맥줏값을 벌었다. 첫 도전에 푼돈을 따다니 행운의 날이라 기뻤다.

미국이 자랑하는 3대 스포츠 이벤트는 월드 시리즈와 슈퍼볼 그리고 켄터키 더비다. 작가 스타인벡은 켄터키 더비를 묘사했다. ‘이것은 경주이고 감동이며 격동이자 폭발이다. 내가 겪은 가장 아름답고 거칠며 만족스러운 것이다.’ 또한 16만 관중이 ‘나의 켄터키 옛집’을 합창한다니 목가적 감흥이 물씬하다.

경마장 말들은 제각기 다른 무게를 짊어지고 달린다. 이를 ‘핸디캡 중량제’라 한다. 실력이 뒤지는 말에게도 우승 기회를 주고자 우수한 경주마는 안장 등으로 하중을 늘린다. 때론 3kg까지 중량을 더한다. 그 목적은 게임의 승률을 비슷하게 만들어 마권을 많이 팔기 위함이다. 관람객은 대역전극을 기대한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엔 말을 훔치는 범죄가 흔했다. 당시 공권력이 완비되지 않았기에 자경단이 조직돼 도둑을 잡았다. 젊은 시절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노스다코타주 자경단원 출신. 경찰 수사에 협조하는 자경단은 지금도 160개가량 있다고 한다.

또한 소떼를 몰던 카우보이가 말을 다루는 기술을 겨루면서 로데오 경기가 펼쳐졌다. 장애물경마는 영국에서 탄생했다. 17세기 말엽 여우 사냥이 성행하면서 목책과 해자를 뛰어넘는 기술과 어우러진 것이다.

근래 상주에서 전국승마대축전이 개최됐다. 특히 ‘마당제’ 행사를 재현했다니 뜻깊은 축제가 아닐까 싶다. 수천 년간 인류와 동고동락하면서 문명 발전을 이끈 말들의 희생을 돌아보는 계기여서다. 고마운 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정토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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