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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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生)이 마구 가렵다
어언 내가 마흔이라는 사실에 당황하고 있을 때,
하늘은 컴퓨터 화면처럼 푸르고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왜정 시대의 로마네스크식 관공서 건물 그림자를
가로수가 있는 보도에까지 늘어뜨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내가 어떻게 마흔인가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病名)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나는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며

11월의 나무는
아직도 살려고 발버둥 치는 환자처럼, 추하다

그래도 나무는 여러 번 살아서 좋겠다.

<감상> “항암 수술 끝내고 오늘부터 무서운 방사능 치료 들어갑니다. 무사히 잘 받을 수 있도록 음악으로 위로해주세요.” ‘출발 FM과 함께’의 이재후 아나운서가 청취자의 사연을 읽는다.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이 끝난 직후라 ‘방사능’이란 말이 당황스럽고 난감하다. 길가 노랗게 물든 11월의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누군가는 노란 손수건을 떠올리고 또 누군가를 황달을 떠올리며, 시인은 “아직도 살려고 발버둥 치는 환자처럼, 추하다”고 한다. 결코 아니다. ‘방사능’처럼 수북이 쏟아지는 은행잎을 보며 나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는 게 좋겠다고 여러 번 다짐한다. <시인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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