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림 안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신호림 안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door stepping)이 194일 만에 잠정 중단되었다. 도어스테핑이 이루어지던 용산 대통령실 청사 1층 로비에 가벽(假壁)이 설치되면서 소통의 공간은 대통령실 내부로부터 차단되었다. 이 사태에 대해 여당과 야당은 각각 MBC와 대통령을 비난하며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도어스테핑이 우리나라에서는 ‘약식 기자회견’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 본래적 뜻이 ‘정치적 유세나 정보를 얻기 위한 조사 작업의 일환으로 특정 인물의 집 앞에 찾아가서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MBC 기자의 언짢은 행동은 다소 무례함을 인정하는 도어스테핑의 전통적인 관습에서 어느 정도 허용이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이번 도어스테핑 잠정 중단 사태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정치적으로 잘잘못을 가리는 소모적인 논쟁이 아니라 ‘소통의 구조’ 그 자체에 있다.

말이 막힘없이 흐르는 것을 소(疏)라고 부르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통(通)하면 소통(疏通)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소통은 말을 하는 발신자가 얼마나 정확하게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의도를 받아들이는 수신자를 반드시 전제해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만약, 수신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혼잣말에 불과한 반쪽짜리 의사소통만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통의 공간에서는 발신자가 수신자의 입장에서, 수신자는 발신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소통이 이루어지는 순간 발신자와 수신자는 동등한 위계에서 의사를 전달하고 서로의 자리를 바꿔가며 대화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보통 이 의사소통의 과정에 권력이 개입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수직적 위계구도에 기반을 둔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자는 주로 발신자의 위치에 서게 되며, 수신자를 동등한 위치에서 대하지 않는다. 권력은 소통의 구조를 수평에서 수직으로 기울게 만든다. 이런 구조 속에서 권력을 가진 발신자는 일방향적인 소통을 강요하거나 자신이 듣고 싶은 말에만 귀를 기울이는 편향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권력이 개입했을 때 소통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구조적인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권력이 존재하는 한 온전한 소통은 불가능한 것일까? 사실 권력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김언종 교수는 “한자의 뿌리”라는 책에서 ‘권력’이라는 단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선, 권력(權力)에서 권(權)은 木과 ?이 합쳐진 형태로 본래는 노란 꽃을 피우는 황화목(黃花木)을 의미하다가 이후에 ‘저울의 추’라는 뜻이 생기게 되었다. 저울의 추는 좌우로 움직이면서 무게를 측정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권(權)에는 임시적 정의 또는 가변적 정의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이 단어가 힘을 의미하는 역(力)과 결합하면서 ‘권력’이라는 단어가 생기게 되었는데, 권(權)이 가지고 있는 의미 때문에 권력은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힘’을 뜻하게 되었다.

권력을 임시적 또는 일시적인 힘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소통의 구조에 개입한 권력의 위계는 금세 해체될 수 있다. 권력은 영원하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대통령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권력이 언제까지고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자신을 향한 비판을 근거 없는 비난으로, 자신의 판단에 대한 의심을 음모론으로, 자신의 말을 거부하는 것을 무조건적인 항명(抗命)으로 받아들이고 소통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감정싸움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도어스테핑이든 어떤 형태의 자리든 간에 소통은 불가능할 것이다.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수직적 위계구조를 허물지 않는 한 소통을 향한 어떠한 몸짓도 정치적 선전에 불과할 수 있다. 때때로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고 잘 이해되지 않은 말조차도 받아들일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권(權)이라는 한자가 가지고 있는 어원을 생각하고 소통의 균형추를 맞추는 역할을 권력을 가진 자가 먼저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권력이 만들어놓은 수직적 위계구도 안에서도 상호 간의 수평적 소통이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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