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정채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감각이 필요함을 익히 알고는 있지만,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의 일정 액수를 시중은행 예·적금에 저축하고 이자소득을 차곡차곡 챙기는 것 외에는 도통 관심을 두지 않았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동학개미 운동으로 주식 시장에 고개를 빼꼼 내밀어 본 적은 있지만, 미미한 수익을 창출한 후 금세 관두었다. 합리적인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공부를 할 정도의 성의는 있어야 했고, 여전히 이윤 창출의 욕망보다는 원금 보장의 안전이 더 큰 이익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적어도 경제를 잘 알지 못하는 경제 문외한, 이른바 ‘경알못’임을 반성하는 계기는 되었던 것 같다.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자산, 바로 부동산이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동학개미’와 더불어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급변하는 시장 질서에서 새로이 등장했던 이들은 바로 영혼까지 끌어모으는 노력으로 부동산을 구매한 ‘영끌족’이다. 최근의 인플레이션과 이로 인한 금리 인상으로 이들 영끌족의 가계부채 부담이 커지고, 부동산 가격의 내림세가 목격되면서, (재작년과 작년의 자산 폭등기와 정반대의 관점에서) 부동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고, 공론의 열기 역시 뜨겁다.

‘부동산 폭락’과 ‘집값 하락세’가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 시세 동향을 확인하는 웹사이트나 앱에서는 빠른 속도로 급매물이 거래되고 있는 아파트 단지들이 실시간 인기 아파트 순위 목록에 올라와 있다. 이를 보면 실거주 목적으로 내 집 장만을 꿈꾼다는 표현만큼 공허한 말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 심리가 충족된다는 전제에서 부동산 거래에 관한 주요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내 가족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려는 목적을 넘어 부동산 구매를 통해 자산 증식의 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욕망이 무리한 대출의 위험을 무릅쓴 영끌을 가능케 하는 주된 동력이 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자산 증식의 맥락에서 가장 선호되는 부동산 형태는 아마도 아파트일 것이다. 최근 아파트 단지의 외래어 작명 관행을 보면 아파트에 투영된 욕망을 읽을 수 있다. 숲이나 산이 있으면 ‘포레’, 공원이 있으면 ‘파크’, 바다가 있으면 ‘마리나’, 강이나 호수가 있으면 ‘레이크’, 역세권이면 ‘메트로’, ‘센트럴’, ‘스퀘어’ 등등 어느 새부턴가 대한민국 아파트는 주변에 있는 입지에 따라서 국적 불명의 이름 붙여지기 시작했다. 나아가 ‘클래스’, ‘퍼스트’, ‘프라임’, ‘프리미어’, ‘플래티넘’ 같은 명칭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계급이라 할 수 있는 소득계층의 상향 이동에 대한 욕망도 발견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아파트라는 자산은 사실상 교환 매개 수단(a medium of exchange) 및 가치 저장(a store of value)과 같은 화폐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진화된 것이 아닌가 싶다. 건물 높이와 구조, 외관 디자인, 호실 평면도, 커뮤니티 공간 등등 최근에 세워지고 있는 아파트는 건물과 호실만 두고 보았을 때 거의 통일적으로 규격화되어 있다. 예컨대 전용면적 85㎡에 공급면적 109㎡인 33평 아파트는 ‘국민주택’의 ‘국민평수’, 이른바 ‘국평’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듯 아파트의 보편적 표준화는 그것의 유사-화폐적 속성을 잘 보여준다.

우리에게 움직여서 옮길 수 없는 재산인 부동산(不動産)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에게 ‘집’이란 사는(live) ‘곳’인가 사는(buy)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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