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명예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명예교수

지난 주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황순원의 <소나기>와 헤세의 <데미안>을 하나의 열쇠로 열어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소년 영웅’과 ‘위대한 어머니’라는 원형적(原型的)인 두 인물에 대해서 아는 것입니다. 신화, 전설, 민담, 동화, 만화 등 일반적으로 어린이용 독서물로 인정되는 서사물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이 두 인물입니다. 소년 영웅은 대체로 남성일 때가 많지만 드물게 여성일 때도 있습니다. 서양의 신데렐라나 우리의 바리떼기 공주 이야기는 여성 소년 영웅담의 대표적인 사례가 됩니다. 그들 소년 영웅들의 카운터파트너(counter partner)가 되는 인물 유형이 바로 위대한 어머니입니다. 축약하면 태모(太母)가 됩니다. 소년 영웅의 캐릭터는 간단합니다. 그는 언제나 선한 인물이며, ‘시련-극복-귀환’이라는 단일 패턴의 서사구조 안에서 활동합니다. 그런데 최초의 어머니인 태모는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선악 구분이 모호합니다. 선할 때도 있고 악할 때도 있으며 그 둘을 다 가질 수도 있습니다. 소년 영웅의 조력자가 되기도 하고 박해자나 방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거기다가 이야기의 문면에 직접 나타나기도 하고 숨어 있기도 합니다. 신데렐라를 박해하는 계모도 태모고 신데렐라에게 마법(어머니의 사랑)을 선사하는 요정 대모(the fairy godmother)도 태모입니다. 한 이야기 안에서 박해자와 조력자를 동시에 연기합니다.


<데미안>은 태모가 자신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이야기에 속합니다. 소년 영웅 싱클레어가 온갖 시련을 다 극복하고 가장 마지막에 하는 일이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에게 영혼의 자식으로, 그녀의 아들 연인(son lover)으로, 인정받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 이미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자신들과 영혼의 가족이 될 수 있는 소년 영웅이라는 걸 알아봅니다. 어머니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소년 영웅과 위대한 어머니의 서사로 <데미안>을 읽는다면 이 소설의 진짜 주인은 에바 부인이 됩니다. <소나기>의 진짜 주인공이 ‘소녀’인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지요(<소나기>의 원제가 <소녀>였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소나기>는 태모가 감쪽같이 자신을 감추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를테면 아동극에서 어른이 아이로 변장이나 변복을 해서 어린 관객들을 살짝 속이고 있는 형국과 같습니다. 이 소설에서 태모는 ‘소녀’라는 가면을 쓰고 등장합니다. ‘소년’에게 ‘소녀’는 ‘어머니의 사랑’이 아니면 해 낼 수 없는 절대적이고 영원하고 희생적인 사랑을 베풉니다. 그 결과, 우리는 소년기에 열망하는 청순하고 순수한 사랑, 불멸의 첫사랑을 <소나기>에서 봅니다. 오직 태모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마법의 사랑을 거기서 봅니다. ‘소녀’가 태모인 이유는 그녀가 소년에게 베푼 사랑이 아무런 원인이나 보상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두레박을 타고 내려온 선녀처럼 ‘소녀’는 어느 날 갑자기 ‘소년’ 앞에 ‘뚝하고 떨어져서’ 지극한 사랑의 묘미를 선사하고, ‘소년’과의 사랑행각 중에 맞은 소나기 때문에 갑자기 죽습니다. 죽어서 오직 ‘소년’ 한 사람의 사랑으로만 남습니다. 그래서 <소나기>를 가장 좋아하는 독자층이 마마보이 성향을 지닌 중년 남성들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랑을 찾는 소년 영웅’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소나기>의 ‘소년’과 <데미안>의 ‘싱클레어’는 동일한 인물입니다. <데미안>을 기름 짜는 기계에 넣어서 그 에센스만 뽑아내면 <소나기>가 됩니다. 아주 단순한 스토리이지만 <소나기>는 무의식 속의 위대한 어머니와의 합일을 통하여 전일(全一)한 자기(自己)를 찾아 나서는 자아(自我)의 내밀한 영혼 탐색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데미안>은 그에 비하면 군더더기가 많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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