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고운 최치원 선생이 가야산에서 쓴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이란 시(詩)가 있다. “바위 골짝 내닫는 물 겹겹산을 뒤흔드니(狂奔疊石吼重巒), 사람 말은 지척에서도 분간하기 어려워라(人語難分咫尺間). 옳으니 그르니 그 소리 듣기 싫어(常恐是非聲到耳), 내닫는 계곡 물로 산을 온통 에워쌌지(故敎流水盡籠山).” 소설이 지난 지가 열흘이 넘었다. ‘霜葉紅於二月花’라고 읊었던 단풍도 이제 탈색되어 뒹군다. 그래도 가야산 계곡의 물은 모든 소리를 덮은 채 차갑게 흐르고 있었다. 늦은 산행이었지만 정신이 맑아졌다.

고운(孤雲) 선생은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옳으니 그르니 시비를 가리는 사람 소리가 듣기 싫어 가야산에 숨었던가 보다. 이해가 간다. 요즘처럼 사람 소리가 듣기 싫었던가 보다. 무엇이 옳고 그르고가 없다. 시비를 가린답시고 떠드는 소리만 요란할 뿐이다. 세상 돌아가는 소리가 봄 무논에 개구리 우는 소리보다 시끄럽다. 아니, 이건 악머구리 소리다. 법대로 한다는데, 순리대로 한다는데 왜 이리 시끄러운지 모를 일이다.

‘계림 황엽’ 오죽했으면 고운 선생이 가야산 계곡의 물소리로 세상의 시비 소리를 덮고자 했을까.

조고각하(照顧脚下)다. 어떤 절의 법당 옆문 섬돌 위에 붙여 놓은 글이다. 발밑을 살펴라. 신을 가지런히 벗어 놓고 법당에 오르라는 말이다. 많은 사람이 오르내리니 여러 종류의 신발들이 어지러워 한 말일 것이다. 그렇다. 부처님을 뵈러 가면서 정성을 들여야 할 일이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돈된 마음으로 법당에 들어가 참배를 해야 마땅하다.

조고각하. 발아래를 살펴라. 가까이 있는 것, 사소한 것부터 챙겨라. 남부터 보지 말고 자기 자신부터 살펴라. 깨달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다. 자신의 발아래를 살피려면 고개를 숙여야 하듯 겸손과 낮아짐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제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신발을 신고 벗으려면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 송나라 법연 선사가 제자 혜근, 청원, 원오 세 사람과 밤길을 가다 등불이 꺼졌다. 선사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혜근은 “바람이 춤을 추니 앞이 온통 밝습니다.” 청원은 “쇠 뱀이 옛길을 가로질러 가는 것 같습니다.” 원오는 “발밑을 조심해야 합니다(照顧脚下)” 했다. 등불이 꺼져 위험하니 당연히 발밑을 살펴야 할 것이다. 법연 선사의 법통이 원오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밖에서 깨달음을 구하지 말고 지신이 처한 상황을 살펴 자신에게서 구하라. 자신의 내면세계를 돌이켜 반성하는 회광반조(回光返照)를 통해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찾아야 한다. 밖이 아니라 나에게서 원인을 찾아라.”라는 가르침을 담은 말이 조고각하다.

살면서 남 탓 한번 안 한 사람이 있을까마는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의 언행에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내시반청(內視反聽)이란 말이 있다. 스스로 마음속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남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의 마음의 눈으로 살피는 내시(內視)는 명(明), 반성하면서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반청(反聽)은 총(聰), 자신을 이기는 것은 강(强)이라 하고, 스스로 낮추면 더 높아진다고 했다.” 사기에 나오는 조량(趙良)의 말이다.

해인사로 가는 관광버스 운전석 위의 TV에서 흘러나오는 시비(是非)의 말. 말. 말 짜증이 났다. 가야산에 이르러서야 고운(孤雲) 선생이 들었던 계곡의 물소리로 한나절 인간의 시비를 잊을 수 있었다. 테스 형도 “자신을 알아라” 했다. 내시반청, 조고각하 합시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