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은 무엇일까. 다양한 후보들 가운데 ‘금속활자’가 수위를 차지했다. 그 덕분에 성경책 가격이 대폭 낮아졌고 폭넓게 보급됐으며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또한 문맹률이 떨어지면서 르네상스와 시민혁명이 촉발됐다는 것이다. 한데 하버드대 글레이저 교수는 ‘도시’를 꼽는다.

인간이 한군데 모여 생각을 교류하면서 문명 발전이 이뤄졌다고 여긴다. 도시는 창조가 생기는 만남의 공간을 제공한다. 역사 흐름을 보면 시대를 견인한 국가는 세계적 도시를 가졌다. 장안·로마·런던·뉴욕이 그러하다. 서울의 경우 ‘아파트’란 주거 형태를 도입해 대도시로 성장했다.

대개 세계사는 농업혁명과 도시혁명 그리고 산업혁명 체계로 파악한다. 지금은 인간혁명이 추가됐다. 이는 호모사피엔스가 문명에 필요한 인지·창작·사교 기능을 조합한 사건. 도시는 이런 4대 카테고리에 포함될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기원전 3500년 조성된 메소포타미아 우루크는 인류 최초의 도시다.

20세기 말엽 뉴욕과 도쿄는 인구 2000만 거대 도시였다. 덩달아 도시의 성격도 변했다. 사람이 거주하나 일터가 없는 ‘교외’란 공간이 등장한 것이다. 도심은 상업과 금융의 중추로 인구가 급감했다. 도시화는 세계적 추세였다. 영국 시인 쿠퍼가 말한 그대로다. 신은 자연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고.

도시의 명칭은 위인들 성명을 빌린 사례도 적잖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름에서 따왔다. 무려 23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베트남 최대 도시인 호찌민은 혁명가 호찌민 성함이기도 하다.

러시아 제2의 도시이자 문화 예술의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도 마찬가지다. ‘성 베드로의 도시’란 뜻을 지녔다. 발트해와 네바강 합류점에 있으며 수많은 섬에 건설돼 운하로 연결된다. 명칭도 누차 바뀌었다. 페트로그라드와 레닌그라드로 불리다가 구소련 붕괴 후에 원래 지명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각별한 장소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이곳에 열흘간 머물면서 여행했기 때문이다. 구석구석 돌아다녔기에 기억도 선명하다. 백야의 시즌인 유월이라 밤늦은 거리 풍경도 이채로웠다.

특별한 추억도 남았다. 호화로운 분위기 마린스키극장에 가서 발레 ‘신데렐라’ 공연을 관람했고, 미하일롭스키 국제황제정원축제에 들렀다가 ‘한국의 날’ 행사에 참석했다. 그건 우연한 행운이었다. 무엇보다도 현대차 상트페테르부르크공장 견학은 최고의 여정이 아닐까. 국력을 실감한 탓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일본 닛산 자동차 건물도 지났다. 러시아인 방문객과 함께 둘러본 현대차 공장엔 주재원 37명과 현지인 2200명이 근무했다. 매일 완성차 920대를 생산하는 공장의 현관을 들어서면 제1호 출고된 빨간색 솔라리스가 놓였다. 보닛엔 정몽구 회장의 하얀색 친필 서명이 유려하다.

또한 벽면 장식장엔 상패가 여럿 진열됐다. 다년간 ‘러시아 올해의 소형차 부문 1위’를 수상했고, 주러 미국 상공회의소가 수여한 사회공헌상도 있다. 우리는 솔라리스를 선물로 받았다. 예쁜 장난감 소품. 작금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현대차 상트페테르부르크공장 경영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보도다. 이미 르노와 닛산은 6년 뒤의 페이백 조건으로 각각 단돈 2루블과 1유로에 매각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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