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프랑스의 위대한 사상가 루소가 참회록에서 자기 자신이 살아오면서 있었던 일을 두고 ‘비열한 짓’이었다며 비판했다.

그가 어렸을 때 자기 집에서 돈을 훔치고 여자 하인에게 누명을 씌웠다. 착한 여자 하인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억울하게 쫓겨났다.

그 후 루소는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덮어씌우는 비열한 행동을 했던 것을 후회하며 괴로워했다. 그는 때론 괴로움에 잠을 못 자며 불쌍한 하인이 자꾸만 떠올라 그 일로 많은 고민을 했다고 썼다.

잘 못된 행위란 그렇다. 평생 가슴에 남는다. 그런데 보통사람들 그중에서도 정치하는 아주 잘 못된 사람들 또는 정당이라는 집단 중에는 걸핏하면 네 탓?이라며 남에게 떠넘긴 경우가 적지 않다. 그것이 그나마 전부 아닌 일부라서 다행이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했으면 그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 잡으면 된다. 그리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명백한 잘못을 자기합리화로 응변하고, 하고 또 한다. 그러다 보니 잘 못된 행위도 모른다.

소인배가 길을 걷다 뾰족 내민 돌에 걸려 넘어졌다. 넘어지고서 돌 탓한다. 가만히 있는 돌에게 자기 발을 붙잡아 넘어뜨린 것처럼. 그것 백 명 천 명에게 물어봐도 걸려 넘어진 사람 잘 못이라고 한다. 명백하다.

그런 명백한 사실에도 넘어진 사람 입에서는 이놈의 돌 너 때문에 넘어졌단 말이다. 그래서 다리를 다쳤잖아? 그렇게 돌 탓을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다.

지역 주민의 지지를 받고 당선 시장·군수·도지사 또는 국회의원으로 일하는 사람들 끼리끼리 모여 당을 만들고 파벌을 조성 걸핏하면 공동대응을 한다. 똑같은 행위를 두고도 내가 또는 내가 속한 당이 하면 국민을 위하는 일이고, 다른 사람 다른 당이 하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해서는 안 된다며 몰아세운다. 그런 행태를 본 국민은 과연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혼란스럽다.

또 똑같은 일에도 여당일 때 다르고 야당일 때 다르다. 그런 행태를 국민들이 볼 땐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도대체 저 사람들 간도 쓸개도 없는 그런 사람들?

국민을 어린아이 아니면 개돼지 취급하는 것인지 그런저런 생각을 갖게 한다. 일상에서 보통사람들은 사람을 두고 어르신, 선생, 그 사람, 그 인간, 그 자者, 그 놈䎛, 그렇게 달리 칭한다.

기왕이면 놈보다 자가, 자 보다 그 인간, 그 어른, 그 선생이 듣기도 좋다. 그런데 자도 아닌 놈이 뛰어나온다고들 말한다.

그 말 왜? 소신이 없는 언행 그래서? 그들은 다수 국민 보다는 자기 자신이 더, 더 나아가 소속 정당이 더욱 중요하다. 자기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위해서 그 무엇보다 소속 정당에 잘해야 한다.

소속정당을 위해, 자신을 위해, 변명의 달인이 되기 위해선 거짓행실에 뛰어나야 한다. 국민은 그런 점에 대해 화가 난다. 걸핏하면 이말 저말 해 놓고 또 변명하고 또 변명하고를 반복한다.

그런 사람 국회의원 또는 통치권자가 된다면 국가는 국민은 어떻겠는가? 그래서 정치인은 정직해야 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그런 사람을 가려내는 건 국민의 몫이다. 기본적인 양심이 있는 인간이라면 놀이마당 광대 같은 짓으로 정치할 생각해선 안 된다.

자신의 잘 못을 남 탓으로 거짓 변명하는 인간의 잘 못된 심리라 해도 정치인이라면 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잘못을 어떤 경우도 남의 탓으로 변명을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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