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명예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명예교수

링반데룽(Ringwanderung)이란 말이 있습니다. 체육(등산) 용어인데 야간이나 악천후로 인해 감각에 혼선이 와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원을 그리며 계속 같은 곳을 돌고 있는 현상을 뜻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말이 영어사전에는 나오지만 독일어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독일어 사전에는 Ring(반지, 원)과 Wanderung(걷기, 산책, 이주)이 따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일본어 사전에는 환상방황(環狀彷徨)이라고 옮겨져 있고요. 같은 제목의 황순원 소설도 있습니다. 그 소설이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황순원 소설을 박사논문으로 쓸 때의 초기 느낌이 링반데룽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1년 반 동안 주제를 찾지 못해 헤매다가(계속 작품만 읽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정상 오르는 길이 눈에 꽉 차게 들어왔습니다.

두어 번 링반데룽을 실제로 겪은 적도 있습니다. 한번은 학창 시절 혼자서 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어 몇 시간 헤맸던 적이 있었고(다행히 하산객들을 만나서 구조되었습니다) 또 한 번은 차를 몰고 여의도에 들어갔다가 출구를 찾지 못해 같은 길을 계속 맴돌았던 적이 있습니다. 분명히 밖으로 나가는 길이라 여겼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게 마치 꿈을 꾸는 듯했습니다. 좌표로 인식된 어느 곳이 결정적인 감각적 오류를 빚도록 강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게 속절없이 돌다가 어느 순간 고무줄이 끊어지듯이 갑자기 섬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지난밤에 갑자기 이 단어가 제 꿈결을 누볐습니다. 링반데룽인가? 꿈속에서 그런 초인지가 들었습니다. 당연히 그 단어에 걸맞은 꿈의 언어(이미지들)가 몇 장면 펼쳐졌습니다. 감정이 실린(아련한 느낌이 함께 했습니다) ‘낯익으면서 낯선’ 풍광 속의 밤길 위에서 속수무책으로 헤매었습니다(주로 아파트 앞길들이었는데 낯이 익은 듯하면서도 실상은 전혀 출입구를 모르는 곳들이었습니다. 꿈의 언어 속에서는 과거와 현재, 상반된 느낌과 인식이 공존합니다). 특이했던 것은 제 앞에 놓인 길들이 마치 로마 시대의 돌길 같았다는 것입니다. 걷기에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출입구도 찾아야 하고 그 불편한 돌길도 걸어야 하는 이중의 어려움 앞에서 답답함과 분노를 느껴야 했습니다. 얼마 전 도심의 한 길을 걷다가 그 비슷한 느낌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멋을 부리느라 큰돈을 들여 보행자 전용도로에다 가로 세로로 박석을 깔아놓았는데 걷는데 여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걸 두고 전시행정, 탁상행정이라고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 불편하고 불쾌했던 경험에, 기회는 이때다, 오래된 상처들이 마치 양식 미역처럼 주렁주렁 매달렸던 모양입니다(불안콤플렉스가 만들어내는 개꿈들은 늘 그런 식입니다). 제 삶의 경험들은 아직도 성인된 서사적 기억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유년기의 트라우마적 기억에 머물러 있습니다. 꿈길에서조차 끝없이 인생 험로(險路)를 걷고 있습니다.

연초부터 몸이 완전히 나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겪어야 했습니다. 심각한 소화불량에서 시작한 육체적 고통이 일순 전신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오장육부가 다 고통의 근원이 되어 온몸에 압박을 가해 왔습니다. 물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했습니다. 누였던 몸을 일으킬 때마다 세상이 요동쳤습니다. 내 몸의 모든 ‘연결된 제어장치’들이 일대 혼선을 빚는 것 같았습니다. 가정주치의께서는 감기와 신경성 위장병이 주원인이니 스트레스 받지 말고 충분히 요양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루하루가 링반데룽 같은 날들이 흘렀습니다. 열흘쯤 지났을까요? 어느 날 갑자기 시야기 트이고 다시 청명한 하늘이 나타났습니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 새벽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인생이란 크고 깊은 산을 가볍고 명랑하게 내려갈 수 있기만을 기원합니다. 링반데룽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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