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공자와 황택이란 아이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공자가 수레를 타고 가는 길에서 7~8세 정도 되는 아이가 성 쌓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수레가 가까이 가도 아이는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공자는 수레가 지나가도록 길 좀 비켜달라고 청했다. 쭈그리고 앉아 성 쌓기 놀이를 계속하던 아이가 한 말. “수레가 성을 비켜야 하나요?, 성이 수레를 비켜야 하나요?” 참 당돌한 말이다.

공자는 아이를 똑똑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이름과 나이를 물었다. 이름은 황택, 나이는 여덟 살이라 했다. 다시 공자가 물었다. “너, 바둑을 좋아하느냐?” 꼬마 황택이 “군주가 바둑을 좋아하면 신하가 한가롭고, 선비가 바둑을 좋아하면 학문을 닦지 않고, 농사꾼이 바둑을 좋아하면 농사일을 못 합니다. 그런데 어찌 바둑을 좋아하겠습니까?”하고 반문하였다. 놀란 공자가 몇 가지 더 물어도 되겠느냐? 고 양해를 구한 뒤 “자식을 못 낳는 아비는 누구냐” 하니 “허수아비”라 대답, “연기가 나지 않는 불은?”하고 물으니, “반딧불”, 다시 “고기가 없는 물은 무엇이냐?”고 물으니 “눈물”이라고 거침없이 대답하여 공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참 맹랑한 아이였다.

벌떡 일어선 황택이 도리어 질문을 던졌다. “겨울에 소나무 잎이 왜 푸릅니까?” 공자 “소나무가 속이 꽉 차서 그런가?.” 자신 없이 대답하자 황택은 “대나무는 속이 비었는데 왜 푸릅니까?”하고 되물었다. 공자가 말이 막혀 사소한 것 말고 큰 것을 물어보라고 했더니, “하늘에 별이 모두 몇 개입니까?” 공자 “그건 너무 크구나.” 그러면 “땅 위의 사람은 모두 몇 명입니까?” 공자 “그것도 너무 크구나.” “눈 위의 눈썹은 몇 개입니까?” 대답하지 못한 공자는 아이가 참 똑똑하다고 생각하여 잠시 제자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수레에 올라 그냥 가던 길을 갔다. 천재불용(天才不用)이라. 머리는 좋으나 덕이 부족하여 성공할 수 없을 것을 간파했음이다. 그 후 ‘황택’이란 이름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황택의 천재성은 8살에서 끝이 난 셈이다.

황택이 천재였을까? 아주 맹랑한 놈, 당돌한 놈인 것만은 틀림없다. ‘맹랑하다’라는 말은 ‘생각과는 달리 이치에 맞지 않고 매우 허망하다’라는 뜻도 있고, ‘깜찍하고 당돌하다’라는 뜻도 있다. 얄밉도록 맹랑한 아이다. 지나칠 만큼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다. 허술하게 볼 수 없는 아이다. ‘당돌(唐突)하다’라는 말은 ‘조금도 꺼리거나 어려워하지 않고 야무지고 굳세다, 행동으로 당황하게 하다’는 뜻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윗사람을 어려워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이나 생각을 야무지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고 쓰는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나타내는 아이를 ‘신동’ 혹은 ‘영재’라 부른다. 성인이 되어서까지 탁월한 업적을 만드는 사람을 ‘천재’라고 일컫는다. 우리나라에도 천재가 많이 나오고 있다. 수학이나 물리 같은 영역에서도 세계올림피아드에서 두각을 드러낸 인재가 있었다. 예체능 분야에서도 세계를 놀라게 한 인재가 많이 나왔다.

세간의 부러움을 샀던 영재들이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어린 나이로 NASA에 입성했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평범하게 산 사람도 있다. 재능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에 휘둘려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학교 폭력에 휘말려 천재성을 잃는 수도 있다. 균형 잡힌 인성 발현을 고려하지 못한 결과다. 천재를 맹랑하고 당돌한 놈으로 만들지 말자. 덕을 갖추어 인류에 크게 이바지하는 천재로 기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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