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진 소설가
임수진 소설가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보통인 주말, 하늘이 청명하다. 시간이 더 지나면 벚꽃이 기다려 줄 것 같지 않아서 밖으로 나갔다. 3월이면 상춘객으로 북적이는 이곳. 벚나무가 만들어 낸 긴 터널. 마스크를 걷어낸 얼굴마다 꽃보다 환한 웃음이 걸렸다.

대부분의 사물은 실제보다 무엇에 반영되었을 때 환상적이다. 웅덩이에 고인 물에 비친 하늘, 바람이 만들어 낸 물고랑은 왠지 사연이 있어 보인다. 천변을 향해 휘어진 꽃가지와 어른, 아이, 그림자. 그 위로 쏟아지는 빛과 그림자의 오묘한 조화를 보고 있자니 모나리자의 미소가 떠오른다. 사람들은 웃는 듯 아닌 듯 모호한 그녀의 미소를 궁금해 한다.

모나리자는 부유한 실크 상인인 조콘도의 아내로 알려졌다. 모나는 이탈리아어로 몬나(Monna)인데 결혼한 여성에게 붙이는 경칭이고 리자는 이름이다. 상상력과 창의력, 호기심의 끝판왕인 레오나르도가 예술 후원자인 만토바의 후작 부인인 이사벨라 데스테의 간절한 요청에도 붓을 들지 않다가 모나리자를 그렸다.

그 일을 두고 여러 가설이 많지만, 마음이 시킨 일이었을 거란 의견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발명, 건축 과학은 물론 해부도 직접 할 만큼 신념과 열정이 있는 레오나르도는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 걸 무척 싫어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이사벨라를 그리면 대우는 좋지만, 그녀의 요구 조건에 따라야 한다는 걸 모를 리 없다.

레오나르도는 모나리자를 오래 작업했다.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 날로부터 16년이 걸렸고 밀라노, 로마, 피렌체, 프랑스 등을 오갈 때도 항상 들고 다니며 틈틈이 작품을 손보았다. 죽음을 맞이할 때도 이 작품이 곁에 있었다는 걸 보면 애착한 만큼 모나리자의 미래 가치를 예견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사실 모나리자는 처음부터 유명했던 건 아니다. 그랬던 작품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건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시련을 많이 겪은 탓이다. 황산 테러를 당했고 돌멩이와 케이크에 얻어맞더니 1911년 8월에는 박물관에서 사라졌다. 모나리자 도난 사건은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다행히 2여 년 뒤에 되찾았지만, 이후 아주 고귀한 몸이 되었다.

현재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전시 중인 모나리자의 몸값은 상상을 초월한다. 프랑스 정부는 모나리자의 경제적 가치를 최소 약 2조3000억 원에서 최대 약 40조 원 내외라고 발표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코로나 이전을 기준으로 했을 때 루브르박물관을 찾는 방문객 수가 연간 1000만 명 정도인데 대부분이 모나리자 손님이기 때문이다.

그 부류에 합류한 적이 있다. 입장하기까지 줄이 길었지만, 기다림을 기꺼이 흡수했다. 드농관 1층 711. 모나리자는 방탄유리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작품은 생각보다 작았다. 가로 53cm, 77cm의 유채 패널화 앞은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까치발을 하고 손을 높이 뻗어 사진을 찍어도 앞사람 뒤통수와 어깨, 팔이 함께 찍혔다.

최대한 가까이 가도 제대로 된 감상은 힘들었다. 화보를 보는 게 더 선명하지만, 진품을 보았다는 설렘. 사실 박물관에는 밀로의 비너스, 에로스의 키스로 되살아 난 프시케, 메두사의 뗏목과 나폴레옹 대관식 같은 대작이 많다. 그런데도 모나리자가 유독 관심을 많이 받는 건 상징성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스토리텔링이 인기다. 작은 마을이나 골목길, 호수에도 이야기가 입혀졌다. 벚꽃 명소처럼 작품에도 마음을 건드려 줄 극적인 사연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그 마음을 공유하고 싶어 그곳으로 간다.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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