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정채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청년(靑年)』, 당시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YMCA)에서 발행하여 1921년 창간된 기관지이다. 1941년 종간될 때까지 20년간 간행된 『청년』은 기독교주의를 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全 분야를 걸친 사회운동과 그 사상적 배경을 기록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의 수난기를 오롯이 견뎌내고 있는 청년들이 시대적 요청에 따라 민족의 계몽을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대와 당위성을 발견할 수 있다.

70~80년대 군사독재라는 엄혹한 시대에서도 청년은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었다. 필자의 부친은 1975년 5월 선포된 긴급조치 9호의 피해자 중 한 사람이다. 유신헌법을 부정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어 불법적 체포 및 감금을 견디어 내었던 당시의 나이는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만 20세였다. 당시 수많은 청년과 학생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하는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면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하는 데 그 누구보다 주체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청년은 이렇듯 자신 있고 패기 넘치며 적극적인 주장을 펼치는 ‘시민’으로서 존재하는지 되돌아본다. 2000년대에 들어와 청년이라는 개념은 서서히 법과 정치 공론에 터 잡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청년은 전형적인 ‘사회적 약자’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공공기관의 청년 미취업자 고용의무를 그 내용으로 하는 청년고용할당제를 예로 들 수 있다. 2002년 학번인 필자의 대학 시절부터 청년의 고용 위기는 현실로 다가왔고, 청년을 사회적 약자로 인식하기 시작한 결정적 시기로 기억하고 있다. 청년의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4년 ‘청년실업해소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이에 대한 국가와 법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2009년 「청년고용촉진 특별법」으로 법의 제명이 변경되었으며, 2013년 개정법은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이 매년 정원의 100분의 3 이상씩 청년 미취업자를 고용하도록 의무화하는, 이른바 ‘청년고용할당제’를 도입하였다. 이후 청년적금, 청년수당, 청년월세지원 등 수많은 청년정책이 쏟아졌고, 청년은 이제 명실상부한 법개념이 되었다. 20여 년간 지속된 일련의 청년정책은 과연 청년의 사회적 지위를 제고하는 데 실효성이 있었는가.

어느 새부턴가 청년은 ‘주체(subject)’가 아닌 ‘객체 혹은 대상(object)’으로서 존재하는 듯하다. 다시 말해, ‘청년’이라는 라벨을 달고 있는 수많은 법령과 정책에서 청년은 청년이라는 집단 정체성을 자발적으로 수용하여, 이를 기반으로 해당 정책의 타당성을 직접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는가. 「청년기본법」, 「중소기업 인력지원 특별법」, 그리고 지자체별 관련 조례 등에서 통일성 없이 제각기 나이로 ‘정의 내려진’ 청년은 여전히 고도로 모호하고 불분명하며 허구적인 관념이다. 사실상 다른 세대라 할 수 있는 M세대와 Z세대를 그저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대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하나의 범주로 묶어버린 ‘MZ세대’라는 개념이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기성세대에 의해 불리는’ 방식을 바라보면, 대상화된 청년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청년의 ‘타자화(Othering)’와 ‘사회적 약자화’는 기존의 ‘청년정책’이 본질적으로 시혜적인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은혜 혹은 선물과 같이 주어지는 정책은 특정 세대의 표심을 얻기 위해 일시적으로 고안된 대증적인 처방에 불과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진정한 의미의 청년정책은 역설적이게도 ‘청년’이라는 라벨을 떼어내는 데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예컨대 청년비례대표와 같이 청년이라는 묘한 시혜적 언어에 갇히지 않은 채, 자신의 고유한 정치적 역량으로 대표성을 얻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청년의 주체적 지위가 복원될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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