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19세기 무렵 태동한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에 대항한 새로운 문예 사조다. 음악의 경우 고전주의는 바흐·헨델·베토벤에 이르는 절제미를 갖춘 상류층 풍류. 주로 궁정 연회장에서 연주됐다.

한편 낭만주의 음악은 동유럽 민속 노래에서 배태해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풍겼다. 당시 프랑스 중심 라틴 문화권에 반발한 변두리 예술. 동유럽 변방인 폴란드 출신 쇼팽은 낭만주의 사조를 대표하는 작곡가다. 독립을 잃은 조국의 비참한 현실을 음악으로 극복하고자 작품에 반영했다.

격식을 깨는 아웃사이더 음악인 면에서 인도의 ‘집시’와 스페인 ‘플라멩코’는 일견 낭만주의를 닮았다. 인도에는 ‘바울’이란 유랑 집단이 있다. 문전걸식과 동가식서가숙하며 노래하는 떠돌이 악사들. 유럽인은 그들을 이집트인이라 여기고 집시라 불렀다. 플라멩코 역시 안달루시아 집시들 눈물겨운 역사. 격렬한 춤과 민요 그리고 손뼉과 기타로 이뤄진 곡조에 설움을 담았다.

이들은 전형적인 버스킹 공연자. 길거리 연주와 노래로 오가는 행인이 적선하는 푼돈을 얻는다. 오늘날 지역 축제 증가와 UCC 일상화로 버스킹이 늘어나는 추세. 이런 비주류 음악은 거리라는 무대 배경과 결합해 친숙한 대중문화가 됐다. 영국의 오스카 와일드가 언급한 그대로다.

현악기는 버스킹 연주자가 많이 애용하는 기구다. 특히 기타가 흔한 편이다. 누군가 기타의 장점을 우스개로 묘사했다. 세상 모든 악기는 ‘기타와 기타 등등’으로 나뉜다고.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뜻인 기타 등등은 소외된 무엇을 은유하기에 절묘하다.

나에게 인상 깊었던 버스킹 풍경은 프라하 카를교와 백야의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꼽힌다. 가장 아름다운 현존 석교로 치는 카를교는 수많은 거리 화가와 버스킹 음악이 재미를 더한다. 유월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하얀 밤의 계절. 넵스키대로 카잔대성당 일대엔 버스킹 인파로 한낮과 진배없다.

요즘은 정치인도 버스킹 유세를 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그 선구자 격이다. 지난 총선과 지선에서 정치 버스킹 캠페인으로 유권자 이목을 끌었다. 고령은 대가야 왕국의 도읍이자 가야금을 제작한 우륵의 고향. 오는 팔월에 이탈리아 로마에서 가야금 버스킹 공연을 펼친다는 보도다.

우리 지역에서 경주를 제외하고 고도라 칭할 만한 도시는 고령이 유일하지 않을까. 우륵은 가야금 12곡을 작곡하고 악사로 활약하다가 대가야 멸망 직전에 신라로 망명했다. 이후 충주에서 제자를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

고령은 서기 42년부터 562년까지 16명 왕이 520년간 통치한 대가야 수도다. 철기문화 발달로 경남과 전북 일원을 아우른 왕국. 왕릉을 포함한 고분군과 유물이 산재한다. 대가야는 전기 가야연맹 맹주인 김해 금관가야가 멸망한 후에 후기 가야연맹을 주도했다. 삼국사기는 신라 진흥왕에게 정복됐다고 전한다. 작금 대가야왕릉전시관을 보면 고고학적 실체가 다가온다.

대가야는 포항과도 인연을 가졌다. 481년 지금 흥해읍인 미질부에 침입한 고구려군을 격퇴해 신라를 도운 기록이 전한다. 한여름 로마제국 심장부에서 벌어질 고령의 우륵 가야금 버스킹으로 이탈리아 한류가 널리 퍼지길 바란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패러디한다. 도시가 매력적인 이유는 사막에 숨겨진 샘처럼 어딘가 버스킹이 있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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