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인간은 책을 읽고 책은 인간을 바꾼다. 이성은 맑아지고 감성은 짙어진다. 남미를 탐방한 훔볼트 여행기는 청년 다윈의 인생을 결정했다. 카프카는 편지글에서 외친다. 우리가 읽는 책이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느냐고.

유대인은 책의 민족이라 불린다. 천국을 도서관으로, 천사 메타트론을 사서로 이해할 정도다. 또한 가난한 이에게 책을 빌려주는 사람은 하나님 은총을 입는다고 여긴다. 책을 대할 때는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라고도 한다. 탈무드는 유대인 율법학자의 구전과 해설을 집대성한 것이다.

누군가 아인슈타인에게 물었다. 다시 인생을 산다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그는 대답했다. 탈무드를 연구하겠노라고. 이는 대화와 토론 과정을 중시한다. 무려 1000만 단어에 38권 분량으로 방대하다.

책은 지성과의 대화다. 독서는 그들이 정성껏 졸여낸 진액을 마시는 셈이다. 저자가 섭렵한 참고 문헌 목록을 보면 그 공덕에 경외감이 든다. 저토록 치열한 내공이 스며야 세월을 견디는 스테디셀러가 탄생하지 않을까.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지은 ‘로마인 이야기’는 매년 한 권씩 장장 15년 동안에 걸친 필생의 역작. 쉬운 문체와 나름의 역사 해석을 곁들여 공감이 간다.

20세기 프랑스 지성인 앙드레 모루아는 ‘프랑스사’를 쓰면서 세 번이나 집필 장소를 옮겼다. 균형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초반부는 미국에서, 중반부는 아프리카에서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모국인 프랑스에서 썼다.

영국 최고의 역사가로 칭송을 받은 마이클 우드는 ‘인도 이야기’를 출간했다. 가족 모두가 인도식 이름을 가질 만큼 인도를 사랑한 학자. 수십 년에 이르는 탐사 경험에다가 직접 달라이 라마를 만나 부처에 관한 말씀도 녹였다.

고대 서적은 파피루스에 필사한 두루마리다. 이를 절단해 묶음으로 철하여 책을 만드는 방법을 고안한 인물은 로마의 카이사르. 필요한 부분만 펼쳐 읽기가 쉬웠다. 한데 이런 혁신은 당대 사회에 채택되진 못했다. 훗날 중세 수도원이 이를 도입해 오늘날 형태 서적을 제작했다.

비행기는 철저한 자본주의적 체계다. 어떤 좌석이냐에 따라 대우가 다르다. 퍼스트 클래스는 성공한 사람들 밀도가 높은 공간으로 정의된다. 그 공통된 특징으로 독서광이 꼽힌다. 유명인 중에도 그런 사례가 드물지 않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인 밥 딜런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중가수. 그의 자서전에 나오는 엄청난 독서량은 놀랍다. 뉴욕 술집에서 노래하던 삼류 시절에도 도서관을 찾았다. 그런 독서 열정은 시적인 가사를 쓰는 자양분이 되었다. 빌 게이츠도 말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마을 도서관이라고.

책은 기록 매체에 따라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나눈다. 마치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를 상징하는 듯하다. 언젠가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여론조사를 하였다. 70% 넘는 응답자가 종이책을 선호했다. 한데 대학가는 변화가 뚜렷하다. 대학 도서관 서적 대출 건수가 매해 감소한다.

이는 자료 이용 추세가 전자로 전환되는 현실을 반영한다. 종이책은 특별한 물리적 아우라가 있다. 사물과 스킨십을 갈망하는 것은 인간 본능인 탓이다. 어쨌든 우리는 책과 독서의 가치를 명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책을 읽는 순간은 무척 소중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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