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가장 근본적인 특징은 두뇌가 커졌다는 점이다. 현대 인간의 두뇌 용적은 과거보다도 배로 불어났다. 호모사피엔스는 불을 이용한 요리로 뇌가 커지면서 인지능력을 갖추었다. 이로써 집단을 이루어 상호 협력하고 언어로 소통해 종간 생존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과학자 연구에 의하면 중년의 뇌는 제일 똑똑하다고 한다. 기억력은 다소 떨어지나 이해력과 판단력은 성장기를 능가한 양상을 보인다. 만약 독서에 최적기가 있다면 바로 중년기가 아닐까.

책은 인간의 두뇌가 창안한 뛰어난 도구 가운데 하나다. 체코의 작가 카프카는 그 가치를 단호히 정의한다. 책이란 우리 내면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인생을 살면서 이런 행운을 접하긴 쉽지 않다. 어떤 특별한 마음 상태에서 운명처럼 공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한 책은 ‘린드 수학 파피루스’다. 기원전 16세기 무렵 공무원 시험 교재로 84개 문항 수학 문제가 수록됐다. 앞장에 근사한 제목도 달았다. 이 책을 사는 것은 곧 성공을 사는 것이란 의미. 이는 붉은색 글씨로 강조됐다. 이집트인은 정말 영리한 민족이란 생각이 든다.

기원전 7세기 메소포타미아 홍수 설화가 기록된 점토 서판도 널리 알려졌다. 19세기 위대한 발견으로 꼽힌다. 이는 히브리 성서상 노아의 방주 얘기와 흡사하다. 구약성경이 신성한 계시가 아닌 중동지역 전승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기원전 1세기 로마제국 권력자 카이사르는 수많은 글을 썼으나 모두 폐기 처분됐다. 암살된 이후 신격화됐기에 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다행히 ‘갈리아 전기’와 ‘내전기’는 제외됐다. 이는 세계 최고의 전쟁문학 걸작으로 평가된다. 자신을 삼인칭으로 표현해 객관성을 유지했다.

가난한 개척자 아들로 태어난 링컨 대통령은 학교에 가지 못했다. 읽기와 쓰기 정도만 알았다. 그는 독학으로 이를 극복했다. 링컨의 품격은 애독서를 체화한 노력에 힘입었다. 거의 암기할 수준으로 되풀이 읽었고 연설과 일상생활에 곧잘 활용했다.

19세기 미국 통신판매 회사인 시어스로벅은 주부들에게 커다란 혜택을 안긴 유통업체. 멀리서 다양한 물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손쉽게 사도록 만들었다. 이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러시아 공산당원의 질문을 받았다. 책을 선물하려면 무엇이 좋겠느냐는 물음. 그는 즉각 대답했다. 시어스로벅 우편주문판매 카탈로그를 선택하겠다고.

‘이 책을 훔치거나 빌렸다가 돌려주지 않는 자는 책이 뱀으로 변해 그를 갈기갈기 찢으리라’ 중세 바르셀로나 어느 수도원 도서관 책자에 붙은 도난 방지용 글귀. 서양엔 전설적인 서적 절도범도 여럿이다.

미국의 블룸버그는 20년 동안 도서관에서 2만 권을 훔쳤다. 다행히 팔지 않고 간직했다. 영국의 제번스도 30년에 걸쳐 유럽 각지에서 5만 권을 빼돌렸다. 대학에 보관된 희귀본 서적도 도둑질 대상이 된다.

언젠가 케임브리지대 도서관에 소장된 뉴턴의 프린키피아 초판본과 갈릴레이 저작 유일본이 사라지기도 했다. 근래 인터넷 서점인 알라딘에서 전자책이 해킹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데 궁금하다. 훔친 e북은 어떻게 유통될까. 온라인 거래는 추적이 되기에 쉽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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