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인류 역사는 인간 중심 관점으로 세상을 재단했다. 대개 자연의 세계는 경시됐다. 사실 지구상 호모사피엔스가 보낸 시간 99%는 수렵채집인 생활. 우리가 대자연을 갈구하는 이유는 그런 유전자를 지닌 탓이다.

자연사와 인류사는 동전의 양면처럼 이어졌다. 때론 경쟁하고 한편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왔다. 단지 사람은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적인 존재로 진화했을 뿐이다. ‘책이 아니라 자연을 공부하라’ 이는 미국 우즈홀 해양생물연구소 정문에 놓인 화강암에 새겨진 문구. 19세기 저명한 지질학자 아가시가 학생들을 가르쳤던 말이다. 자연사를 다루는 박물학 가치를 상징한다.

인류의 생존에는 풀부터 별까지 자연사 이해가 필수였다. 박물학은 자연사를 섭렵하는 학문이다. 이는 생물학·물리학·지질학을 포괄한 최초의 과학.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중시한 분야다. 18세기 광범한 자연사 범주는 다양한 카테고리로 분화됐다. 그 가운데 지질학은 지구를 탐색하는 영역이다.

과학은 실험과학과 현장과학으로 나눈다. 양자는 연구를 수행하는 곳이 다르다. 실험과학은 실험실로 불리는 공간에서 가운을 입은 연구자가 실험을 담당한다. 반면 현장과학은 야외에서 업무가 전개되고 힘든 노동이 필요하다.

탐구 장소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현장과학은 관찰 기록이 선호되고 현지인 협조에 의존한다. 지질학은 대표적인 자연사적 관찰과학에 속한다. 당연히 비전문가들 도움이 지대했다. 대상 표본과 자료 수집에 핵심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지질학 역사에도 유명한 사례가 있다. 화석은 죽은 유기체가 퇴적암에 보존된 것으로 아득한 과거 정보를 담았다. 그 수집이 취미이자 생계 수단인 매리 애닝은 탁월한 지식을 가진 아마추어. 쥐라기 해양생물 화석을 발견해 지질사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한데도 학계는 공헌을 인정치 않았다.

박물관 진열 화석은 처음 찾아낸 그녀의 이름 대신 돈을 주고 사들인 구매자 성명이 적혔다. 물론 현장 조사에 관여한 원주민을 기리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 샤모니에 세워진 지질학자 소쉬르와 산악 안내인 발마의 동상이 일례다. 소쉬르는 ‘지질학’ 명칭을 최초로 사용한 학자.

지질학은 지구를 대상으로 고찰이 이뤄진다. 지구는 중심에 있는 열핵과 암석이 녹은 액체성 맨틀 그리고 고체인 지각으로 구성됐다. 지각은 대략 7개 판으로 형성됐고 매년 10cm 정도씩 천천히 움직인다. 이에 따라 수많은 지질 현상이 생긴다고 여기는 학설이 소위 ‘판구조론’이다.

그 이론에 따르면 서로 충돌한 지각판은 한 상판이 다른 상판 밑으로 밀려들면서 대륙엔 산맥이 융기하고 해저엔 열수구가 만들어진다. 오늘날 45억 년이라 추정하는 지구의 나이도 오랜 세월 지속된 논쟁거리.

아일랜드 주교인 어셔는 ‘기원전 4004년’에 지구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나이를 합산해 계산한 어림수. 이는 성경에 인용되면서 장기간 진리로 믿어졌다. 훗날 케플러와 뉴턴도 비슷한 수치를 주장했다.

유네스코는 지구의 역사를 대변하는 세계지질공원을 인류 유산으로 지정해 보존한다. 작금 한국은 다섯 개가 등재됐다. 우리 지역 청송도 그중 하나다. 지구촌 브랜드 도시란 의미. 주왕산 절경과 함께 지질학적 관조로 인문과 풍경이 어우러진 청송 여행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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