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윤 대구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김동윤 대구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흔히들 생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당연하다. 매우 중요하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사상가 폴 발레리(Paul Valery)의 메시지다. ‘철의 여인’, 금녀의 세상에 도전한 영국 최초 여성 총리 마그렛 대처(Margaret Thatcher)의 비하인드 스토리 영화의 명대사도 생각의 중요성에 무릎을 치게 한다: ‘생각을 조심해, 생각은 말이 되니까’, ‘말을 조심해, 말은 행동이 되니까’, ‘행동을 조심해, 행동은 습관이 되니까’, ‘습관을 조심해, 습관은 인격이 되니까’, ‘인격을 조심해, 인격은 운명이 되니까’. 운명, 생각에 달렸다는 얘기다.

지혜(sophia)를 사랑하는(philo) 학문, 철학(philosophy)도 ‘생각’을 다룬 학문이다. 나와 나 이외의 것, 즉 우주에 대한 탐구의 산물인 ‘소피아’ 원천이 ‘생각’인 까닭이다. 생각은 나를 탐구하고(존재론), 나 이외의 우주를 탐구하며(우주론), 인식의 주체인 ‘나’가 인식의 객체인 ‘대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탐구한다(인식론). 윤리와 정치, 역사, 법, 과학, 심리, 문화와 같은 실천철학도 해당 테마에 대한 깊은 ‘생각’의 산물이리라. 인간 존재와 그 존재를 둘러싼 우주를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한 인문학적 응답이 곧 철학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인 자연현상을 다루는 자연과학과 달리, 인문학은 인간이나 인간 삶과 관련한 근본적인 질문이나 사상 그리고 문화를 성찰한다. 인문의 가치나 의미를 상상하고 통찰하는 학문 분야인 것이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문학의 기원이 음악, 기하학, 문학, 천문학, 역사학, 언어학, 수사학 그리고 논리학 등 다양한 영역을 두루 아우르는 까닭이다. 인문학이 아니고서는 나는 누구이며, 왜 여기에 있으며,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에 대한 자기 위치 기반이 대단히 위태로워진다.

‘문송합니다!’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홀대의 단적인 메타포다. 이과가 아니라 문과를 전공해서란다. 사람이 인간의 원천과 본질을 다룬다는데 죄송해야 한다니 도무지 무슨 얘긴지 영문 모를 일이다. 뭔가 거창한 이유나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옹졸하게도, 취업이 잘 안 돼서란다. 수단과 도구적 목적에 경도된 나머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인문학을 득달같이 죽이기라도 할 기세다.

그런데도 이상하다. 넘쳐나는 강연이나 북 콘서트, 축제와 공연이벤트 등이 인문학이라는 간판으로 치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문송하다!’고는 했지만, 정작 인문학에 대한 끌림은 천륜처럼 거부하기 힘든 모양이다. 들리는 대로 듣고, 보이는 대로 본다고 될 일이 아님을 방증하는 경험은 일상에서 차고도 넘친다.

인문학적으로 보고 듣자! 인공지능(AI),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우수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AI의 딥러닝을 학습시키는 사이언티스트가 갖추어야 최고의 덕목은 오히려 인문학이다. 복잡한 현실 세계에 제대로 먹히는 통찰력은 데이터 자체를 다루는 기술과 기법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문적으로 읽고 이해하며 그 이면의 패턴에 대한 분석과 통찰을 통해 획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이 아니라 인문기술이어야 먹힐 수 있다. 인문학적 성찰과 통찰에 기반하지 않는 이과적이기만 한 기술은 맹목 기술 중심주의를 초래할 뿐이다. 기술과 동떨어진 인문학은 사변적일 수 있지만, 인문적 토대에 기반하지 않는 기술은 사상누각이다. 기술과 인문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공명해야 한다. 이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융복합 내지는 통섭이 아닐까 한다. 현실에서는 여전히 따로 놀고 있지만 말이다.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을 포기할 수 있다.’ 2011년 작고한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 선생이 남긴 명언이다. 소크라테스와 함께하는 점심 대화를 통해서 애플을 능가하는 창업의 지혜를 구하고, 이 지혜를 바탕으로 창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이리라. 또 다른 잡스의 명언, ‘단순함이란 디자인 궁극의 정교함이다.’ 시각적으로 뭔가를 정치하게 보여 주어야 하는 디자인의 세계마저도 보여줌을 최대한 절제해야 한다는 디자인 원리다. 인문학에 대한 잡스 선생의 지독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필자는 잡스 선생이 인문학도였다고 확신한다. 애플의 최고경영자이자 억만장자인 잡스선생의 옷차림은 공석이나 사석이나 거의 똑같다: 목까지 올라오는 검은 상의의 하프 터틀넥과 리바이스 청바지. 신제품을 발표하는 아주 중요한 자리에서도 예외가 없다. 그러므로 남루함이니 단촐함으로 단순히 말할 순 없다. 인문학적 패션과 디자인 전략이다. 선생의 옷차림에서 인문학적 향수가 물씬 느껴진다. 애플은 잡스의 창작물이지만, 그런 잡스를 창작시킨 건 바로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잡스를 만들고, 잡스는 애플을 만들었다. 문송하다니, 천부당만부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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