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세상에는 자기가 제일인 줄 아는 사람이 더러 있다. 특히 정치하는 사람 중에 그런 잘난 사람이 있다. 원자력 문제도 자신이 최고 많이 알고, 기후 문제도 자신의 말이 맞고, 해류도 자신의 말대로 흐른다고 믿는 사람이 있어서 골칫거리다. 남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 약을 올리거나 애타게 만드는 데 특허권이 있는 사람이다. 민망하여 상종하기가 거북스럽다.

세상 사람 중에 80%는 남의 약점 찾기를 잘한다.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잘한다. 남의 장점을 찾는 일은 어렵다. 관심을 기울여야 보인다.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펴야 보인다. 남의 장점에는 시큰둥하거나 아예 외면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세상의 대화 중에 80%가 남의 험담이다. 험담하면서 신이 나서 열을 올린다. 모 방송 프로에 ‘동치미’도 시원하다. 그러나 건전한 비판이라는 명분 아래 비판 아닌 비방의 말이 난무하기 일쑤다. 세상의 밝음이 빛을 잃는다. 양달은 보지 않고 응달만 보는 사람들. 내 편 아니면 적으로 보는 이분법적 사고다. 자질이 부족한 정치인이 많은 탓이다.

난득호도(難得糊塗). 어리숙하게 보이기가 어렵다. 어릿광대 피에로(Pierrot)가 연극의 재미를 살린다. “저는 잘난 백정, 남은 헌 정승으로 안다”라는 말이 있다. 별 재주도 없는 사람이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만만히 보거나 업신여길 때 쓰는 속담이다. 세계적인 과학자도 한낱 거짓말쟁이이거나 자신보다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인사가 있다.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마음, 남을 헐뜯어 골탕 먹여보겠다는 마음으로 단단히 무장된 사람이다. 모르거나 부족하면 더 악을 쓰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말이 난득호도다.

빛을 감추고 티끌 속에 섞여 있는 것이 화광동진(和光同塵)이다. 성인은 빛을 감추고(성인도광, 聖人韜光), 현인은 속세를 피한다(현인둔세, 賢人遁世)는 말도 있다. 참으로 어려운 것(난득, 難得)은 어리숙하게 보이는 것(호도, 糊塗)이란 말도 자기의 재주를 숨기고 우둔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아니라, 잘난 체하고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함부로 설치지 않는 것, 나대지 않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사자성어로 청(淸)나라의 화가 겸 서예가로 알려진 판교 정섭의 글에서 연유되었다.

시서화(詩書畵)에 모두 특색 있는 작풍(作風)을 보여 삼절(三絶)이라 불린 정섭이 날이 저물어 산동 지역 어느 집에 묵게 되었을 때, 어리숙해 보이고, 자신을 호도노인(糊塗老人)이라 자칭하는 주인을 만났다. 알고 보니 은거하는 전직 고위관료였다. 그 주인이 글을 부탁하자 난득호도(難得糊塗)라 쓰고, 이어서 총명난 호도난(聰明難 糊塗難)이라 써주었다고 한다.

집착을 버리고 한 걸음 물러서는 순간 마음이 편해진다. 모두가 잘난 혼란한 세상에서 재주를 과시하지 말고 살아가라는 얘기다. 능력을 넘어 욕심내다가 한꺼번에 잃는 일이 허다하다. 알면서도 손해를 볼 줄 아는 어리숙함이 듬직함이요, 현명함이다. 수양(修養)이 된 사람의 품격이다.

도광양회(韜光養晦). 칼 빛을 감추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실력을 기른다.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말이다. 함부로 설치는 경박함은 없지만, 꿍꿍이속이 있어 보인다. 대륙적이라 할까, 능구렁이 느낌이 든다.

‘크렘린’이란 말처럼 엉큼한 맛이 든다. 잔재주를 부리는 경박함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지도자급 인사 중에 입놀림이나 몸놀림에서 듬직하게 무게 있는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너무 속내를 감추는 크렘린 같은 사람도 싫지만, 잘난 체하거나 혼자 다 아는 것처럼 나대는 사람이 많아 민망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난득호도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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