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연일 前 포항대 사회복지과 교수·시인
배연일 前 포항대 사회복지과 교수·시인

얼마 전 인천시가 여야(與野) 정당에서 내건 현수막 철거에 나섰다는 보도를 접했다.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시민도 인천시의 이런 조치에 큰 박수를 보냈다지 않는가. 인천시가 현수막을 철거한 이유는 현수막 게시 기간(15일 이내)을 넘긴 데다 아무 곳에나 내 건 현수막으로 인해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늘 보아서 알듯이 여야는 무차별적으로 상대 당에 대한 비방과 인신공격으로 가득 찬 현수막을 전국 길거리 곳곳에 내걸고 있다. 그래서 많은 국민의 짜증과 노여움을 유발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길거리가 현수막으로 여야의 전쟁터가 된 형국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듯 정당이 무분별하게 설치한 현수막 때문에 민원이 폭주하자, 행정안전부는 지난 5월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교통안전과 이용자의 통행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는 위치, 즉 어린이·노인·장애인 보호구역 등 사고에 취약한 지역은 설치를 자제하며, 높이는 2~3m 이상(사람 키 높이 이상) 위치에 설치하도록 했다. 아울러 버스정류장이나 교통섬에도 정당 현수막을 걸 수 없도록 했으며, 교통 신호등이나 CCTV를 가리는 방식의 설치도 자제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자제’라는 용어부터 필자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자제’라는 용어가 일반 국민에게는 마치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려서이다. 다시 말해, 정당에 대한 현수막 게시 규정이 일반 국민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니 말이다. 게다가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는 권고 사항일 뿐, 처벌 규정이 미약해 대부분의 지자체는 단속에 손을 놓고 있는 편이다.

어쨌든 이번에 인천시가 정당 현수막 철거에 나서자, 시민 대부분은 속이 다 후련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그러나 행정안전부는 대법원에 인천시의 조례 무효 확인 소송을 냈다고 한다. 현수막 철거가 아무 제약 없이 현수막을 걸 수 있도록 한 옥외광고물법에 위반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그건 일반 국민은 현수막을 꼭 지정 게시대에 걸게 되어 있다. 그런데 유독 정치인과 정당의 현수막은 아무 데나 걸어도 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특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이건 형평성을 헤치는 명백한 불평등이고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라고 본다.

대부분 국민은 도시 미관을 해치면서 상대 정당을 노골적으로 헐뜯는, 심지어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부인까지도 비난하는 현수막을 볼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주로 상대 정당의 약점이나 잘못된 것만 지적하는 저급한 내용의 현수막은 우리 국민에게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혐오감을 더하기도 한다. 더구나 정당이 건 현수막을 보고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도 솔직히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한 현수막 내용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수막에 담긴 내용이 어쩌면 우리의 정치 수준을 대변하는 것 같아 여간 씁쓰레하지 않다. 그런데도 이런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정치인은 혹 외계에서 온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다.

작년 6월 헌법상 정당 활동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정당 현수막에 대한 옥외광고물법 제3조, 제4조 적용을 배제하는 옥외광고물법이 개정(시행은 2022년 12월)되었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 일반 국민과 달리 정당 현수막 게시만 예외로 하는 건 몹시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국회는 정당 현수막 난립으로 여론이 악화하자 뒤늦게 옥외광고물법 재개정에 나서겠다고 했다. 그러나 발의된 법안들은 현재 상임위에 계류된 상태다.

따라서 여야는 도시 미관을 해치고, 사고 위험을 높이며,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현수막을 묻지마식으로 게시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현수막을 통해 알릴 사안이 있다면 일반 국민과 똑같이 지자체의 허가를 받은 뒤 지정 게시대에만 걸도록 함이 백번 옳은 일이다.

여하튼 국회는 하루빨리 옥외광고물법 재개정을 서둘러 주기 바란다. 그것이 정치 공해에 시달려 온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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