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바보’는 선천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을 가리킨다. ‘어리석다’와 어원을 공유하는 ‘어린이’는 후천적인 미성숙을 가리킨다. 바보와 어린이는 충분히 자라지 않았다는 점에서, 즉 미성숙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다만 그 원인에서 차이가 있다. 바보는 선천적, 어린이는 후천적 미성숙에 속한다.

‘어리석다’와 뜻이 가까우면서 자주 쓰이는 말에 ‘무디다’가 있다. ‘둔(鈍)하다’라고도 한다. ‘날카롭다’에 반대되는 말이다. 예민하거나 빠릿빠릿하지 못한 것을 가리킨다. 칼날이 서지 않아 잘 들지 않듯이 몸과 마음의 움직임이 둔한 것이 ‘무디다’이다.

‘무딤’은 ‘바보’와 ‘어림’ 중에 어느 쪽에 가까울까? 따지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무딘 사람은 대체로 ‘성격상’ 무딘 사람이다. 성격은 아무래도 타고나는 측면이 강하다. 무딘 사람이 연습을 통해서 빠릿빠릿해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무딤’이 ‘바보’는 아니다. ‘무딤’은 예리하지 않아 느릴 뿐이다. 느려도 결국 이해와 깨달음에 이르게 되므로 바보가 아니다. 무디면서도 현명한 사람도 있고 무디면서 어리석은 사람도 있다.

무딘 사람과는 달리 ‘미련한 사람’이 있다. 선천적이 아니면서도 교육을 통해 교정하기 힘든 사람이다. 바보가 아니라서 스스로 교육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이다. 국어사전에 ‘미련’을 ‘(태도나 행동이) 어리석고 둔함’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좀 부족한 설명이다. 미련함에는 ‘고집’이 들어가 있다. 어리석고 둔한 태도나 행동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는 것이 미련함이다. ‘고집’이 문제가 된다.

미련한 사람은 대개 자신이 어리석다는 사실을 모른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의 생각과 태도를 ‘고집’한다. 이 ‘고집’이 미련의 특징이다. 자신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남의 조언이나 충고, 혹은 교육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성경에도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라 했다. 자기 마음, 자기 행동만 옳다고 믿는 것이 ‘미련함’이다. 자기는 틀릴 수가 없다고 버틴다. 자기 마음에서 처리돼 나오는 정보가 확실하다고 믿는다. 끝까지 고집을 피운다.

잘못은 다른 사람에게 있을 수밖에. 일이 잘못되면 제도 때문이거나 다른 사람 탓이다, 심지어 운명이나 하느님 탓이다. 남 탓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다. 일이 계속 꼬여도 자신의 행동에는 잘못이 없다고 믿고 있다. 자기 마음을 믿는 태도가 ‘고집’의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 물론 본인은 고집 아닌 소신이라 생각한다.

고집과 소신은 다르다. 미련한 사람은 대개 다른 사람을 좀 우습게 안다. 남의 말과 행동을 업신여기고 멸시한다. 그러니 충돌이 불가피해진다. 늘 싸운다. 미련한 사람이 다른 미련한 사람과 충돌하면 불꽃이 튈 것은 뻔하다. 서로 옳다고 우기는 미련함 사이의 논쟁이나 쌈박질에는 백약이 무효다. 미련한 사람은 다툼을 달고 다닌다. 바로 고집이다.

미련한 사람이 다툼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은 ‘화내기’다. 미련한 사람은 자기가 틀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하고 논쟁에 임한다.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배제했으니 설득은 불가능하다. 계속 씹고 싸울 뿐이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말이 소신(所信)임을 내세운다. 그 말이 소신으로 인정받으려면 구체적 행동이 뒤따라야 하고 폭넓은 의견 수렴도 하여야 한다. 체크가 가능하고, 가시(可視)적이어야 한다. 빠름을 믿는 토끼의 ‘미련’한 맹신보다 늦음을 아는 거북의 ‘무딤’이 나을 것도 같다. ‘물난리’와 관련된 어느 광역시장의 처신도 ‘미련’한 고집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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