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광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경북지역본부 건설안전부장
이우광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경북지역본부 건설안전부장

오랜 직장생활에 지친 이들 중 상당수는 노후에 한적한 시외에 전원주택을 짓고 조그마한 텃밭을 가꾸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같은 꿈이 있어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조그마한 땅에 몇 해 전 농막을 지으려고 도전했습니다.

농막은 2층 구조로, 아래층은 창고이고 위층은 주거용으로 만들 계획이었습니다. 1층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설치했고 2층은 직접 만들기로 했습니다. 강관 파이프로 뼈대를 만들고 천막을 씌우는 작업이 남았습니다. 지붕은 약 6m 정도로 지상에서는 손이 닿지 않는 높이였습니다.

고소작업대가 있다면 이를 활용해 쉽게 마무리가 가능한 작업이나 당시에는 장비가 마땅치 않아 사다리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알루미늄 사다리는 높이가 2m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고민하던 중 마침 10여 년 전 아버지께서 만들어두신 목재 사다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길이를 보니 6m 정도 되고 무게도 가벼워 지붕 작업에 사용하기에 알맞아 보였습니다.

지붕에 사다리를 걸쳐 놓고 올라가려고 보니 사다리의 발판이 생각보다 약합니다. 발판이 못으로 고정되어 있었지만 낡아서 밟자마자 부서지려고 합니다. 겨우 조심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다가 이러다가 사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 3m 정도 올라갔을 때, 사다리에서 뿌지직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순간 “아, 떨어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이어 바닥으로 추락했습니다. 잠시 후 의식이 돌아왔을 때 저는 3m 아래의 땅바닥에 누워 있었고, 떨어지고 난 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크게 외상을 입지는 않았습니다.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순간, 기억이 멈췄습니다. 떨어지겠다고 생각한 순간 벌써 몸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상태였고 그 순간의 기억은 백지상태입니다. 구사일생으로 정신이 들면서 ‘사고는 이렇게 해서 발생하는구나.’라고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안전 관련 일을 업으로 하는 저의 행동이 너무 안일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간 사업장 안전점검을 할 때는 안전모를 꼭 착용했으면서도, 막상 제가 추락사고의 가장 큰 기인물 중 하나인 사다리에 올라가 작업을 할 때는 안전모 착용을 잊었습니다. 지금은 근무 중도 아니며 주말농장에서 내 소일거리를 하는 것이라고 안일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다리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제가 안전모를 잊다니 부끄러운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안전불감증을 조심하라고 연일 이야기하던 제가 정작 스스로가 안전불감증임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요즘도 농막에 그늘막을 설치하거나 수리할 때 종종 사다리 작업을 합니다. 몇 해 전 추락의 경험이 있는 낡은 목재 사다리가 아닌 튼튼하고 견고한 A형 사다리를 사용합니다. 사다리에 올라가기 전 지지상태가 양호한지 발판 첫 단을 꾹 눌러서 밟아보고 올라갑니다. 사다리의 지지상태가 불량하면 발판 상단부로 올라갔을 때 사다리가 넘어질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또한, 사다리의 최상단 발판을 밟을 경우에도 사다리가 넘어질 위험이 높아 절대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안전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타인이 하라고 해서 억지로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산업현장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가운데서도 위험요인이 있다면 보다 안전한 방식으로 작업 방법을 바꾸거나 최소한의 개인보호구라도 착용하는 것이 생활 속에서 안전을 실천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그 날의 추락사고 이후, 저는 농막에서 사다리를 사용하는 작업을 할 때는 반드시 안전모를 착용한 후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은 이런 저를 신기한 듯이 바라보십니다. ‘이만한 일에 저렇게까지 하나?’라는 의중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거나 늘 해왔던 일이라 사소하게 치부했을 때 사고는 나의 일이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