쭉쭉뻗은 삼나무 숲, 때 묻지 않은 순수함 그대로 간직

아유모도시자연공원에 천연 화강암으로 뒤덮은 계곡의 모습이 보는이를 압도한다.

트레킹 2일차(8월 13일) 아침이다.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기분도 상쾌하고 가벼운 듯 일행들이 한층 밝은 모습으로 호텔 1층 식당에 앉았다. ‘미소시루(일본 된장국)’와 ‘낫도(納豆)’가 곁들여진 간단한 조식 메뉴가 눈에 익다.

친절이 몸에 밴 몸놀림으로 아침 식사를 내어놓는 호텔 사장가족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여기도 연휴 탓에 종업원이 없어 어쩔 수 없나 보다. 가벼운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늘 첫 일정이 ‘시라다케(白岳)’ 산행이라 등산 장비를 챙겨 나온 일행들이 호텔 앞에 모인다.
 

시라다케 등산로 입구에 세워진 스모시라다케원시림에 대한 안내판 뒤로 시라다케 모습이 보인다.

대마도의 상징인 ‘시라다케’는 해발 519m로 이즈하라에 있는 ‘아리아케산(有明山 558m)’ 보다 높진 않지만 일본 큐슈지방의 100명산에 들어 있는 대마(對馬: 마주 보고 있는 두 마리의 말)를 상징하며 우뚝 솟은 두 개의 흰 바위 봉우리, ‘시라다케(白岳)‘가 더욱 유명하여 등산객들이 선호하고 있다. 또한 대마도 주민들이 신성시하고 있어 널리 알려진 산이기도 하다.

대마도 산행이라면 시라다케를 빼놓을 수 없는 삼나무 원시림으로 뒤덮인 최고의 산행지로 등산코스는 크게 두 가지로 안내하고 있다.
 

우리 일행 맞은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일본 젊은이들이 반가운 얼굴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첫째 코스가 이즈하라에서 차로 30여 분 이동하여 만날 수 있는 ‘카미자카(上見坂)공원’ 전망대에서 주변 조망과 풍광을 감상한 뒤 ‘시라다케 등산로 입구’라는 안내판 앞에서 시작되는 루트를 말한다. 일본 특유의 삼나무가 빼곡한 원시림으로 들어서는 산행로를 따라 오르내리며 걷는 힐링로드가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지점에서 갈림길이 생기며 왼쪽 오르막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갈림길이 시라다케 정상으로 가는 분기점으로 ‘시라다케 신사(神社)’로 들어가는 첫 관문인 ‘도리이(とりい:鳥居)’가 세워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리이’를 통과하여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급경사 바윗길을 로프를 타고 올라서면 두 개의 흰 바위 봉우리로 이뤄진 시라다케 정상에 닿는다.
 

시라다케 둥산의 들머리인 스모마을로 걸어가는 일행들.

시라다케 산행은 통상 카미자카전망대 코스를 많이 이용하는데 코로나 여파로 등산객이 없고 태풍 등으로 산행로가 훼손되어 현재는 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다. 두 번째 등산코스는 시라다케등산의 하산 지점으로 많이 이용되는 ‘스모(洲藻)’마을에서 반대로 분기점인 신사 ‘도리이’까지 오르는 코스로 완만한 경사로가 이어지고 계류를 건너가는 등 어렵지 않은 루트로 알려져 요즈음 시라다케를 등산하는 산객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스모마을에서 바라본 시라다케(白岳)가 반갑게 맞는듯 하다.

우리도 두 번째 코스인 스모마을에서 시작하여 분기점인 신사 ‘도리이’까지 가는 것으로 예정하고 이즈하라에서 스모까지 차로 40여 분 달려 ‘스모’마을에 닿았다. 여러 번 갔던 곳이라 낯설지 않다. 스모마을은 대마도에서 흔하지 않은 벼농사를 짓는 농촌마을로 퍽이나 평화롭고 조용한 풍경을 보여준다. 너른 들판의 초록 물결과 함께 상쾌한 공기를 마사며 걸어가는 일행들의 몸놀림이 가볍다. 우리나라 어느 한적한 농촌 들판을 걷는 듯 익숙한 발걸음들이다. 스모마을에서 멀리 보이는 시라다케의 두 봉우리가 파란 하늘아래 선명한 자태를 뽐내며 산객을 기다리는 듯하다. 들판이 끝나고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게류를 끼고 삼나무 우거진 산길이 시작된다.
 

스모마을 길가에 핀 무궁화꽃이 반갑다.

일본의 산에는 어디를 가더라도 ‘스기(衫)’라는 삼나무가 뒤덮고 있다. 걷다 보니 계류를 건너기 위해 신발을 벗고 가는 곳도 있어 모처럼 시원한 여름산행 맛을 낸다. 서서히 고도를 높이는 산행이라 나이 든 필자도 힘이 들긴 하지만 여러 차례 다녔든 경험자의 체면(?)에 힘을 내어본다. 함께한 내자(內子)도 힘든 내색 없이 일행들과 보조를 맞추며 올라 간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씨를 무릅쓰고 두 시간 이상을 걸어 분기점인 돌로 만들어진 ‘도리이’에 도착하였다. 더 이상의 산행은 무리일 것 같아 휴식을 취한 뒤 하산하기로 한다. 연속적인 돌길에 지치기도 하지만 삼나무숲이 주는 피톤치드의 청량함이 폐부를 타고 흘러 산행의 묘미를 한껏 느끼게 한다.

‘도리이’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는 스모마을로 회귀한다. 맑은 계곡물을 건너고 숲 속의 자연이 연주하는 하모니에 빠져 하산길이 너무 빠른 듯 지나 간다. 오를 때 무심코 지나친 폭포가 우렁찬 물소리를 내며 보란 듯이 얼굴을 내민다. 힘들고 어렵긴 해도 자연을 벗 삼아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기는 게 트레킹의 묘미가 아닐까. 이런 맛에 취하는 트레커들의 특권(?)이다.

시라다케 산행을 마치고 다시 이즈하라로 돌아왔다. 시내에 있는 식당 ‘기온(祇園)’에서 일본 정식으로 힘든 산행에 소진된 기력을 다소나마 채운다. 오늘 점심의 “내가 사께”는 필자가 쏜 시원한 ‘아사히 나마비루(生麥酒)’로 타는 목마름을 달랬다. 점심을 마치고 곧장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아유모도시(鮎もどし)’자연공원으로 간다. 쓰시마 남쪽에 위치한 ‘세가와(瀨川)’강을 따라 계곡 전체가 천연 화강암으로 덮여있는 대자연 경관을 살린 자연공원으로 산책로, 캠핑장, 스포츠슬라이더, 미니골프장, 만남의 광장 등 다양한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 곳으로 맑은 물(淸流)이 흐르는 계곡으로 ‘은어(鮎)가 돌아온다’는 뜻으로 ‘아유모도시’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자연공원의 너른 암반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계곡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한여름의 무더위를 피하고 더러는 계곡물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피서객들의 웃음소리가 청량한 계곡에 울려 퍼지고 일행들이 앉은 건너편에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재미난 놀이를 하면서 깔깔대고 흐르는 계곡물에 연신 들락거리며 한껏 즐기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다. 일행 중 나이가 젊은 회원들도 덩달아 물속으로 들어간다. 여성회원 몇 분도 그새를 못 참아 입수(?)(入水)하여 아유모도시를 즐긴다. 물놀이를 즐기다 끼고 있던 안경을 빠트려 찾느라 한바탕 소동을 벌인 에피소드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 거리로 남을 것 같다.
 

맑고 시원한 계곡물을 건너 하산하는 일행들.
아유모도시자연공원에서 현지 젊은이들과 함께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일행들.

자연공원 주차장에서 계곡을 가로지르는 현수교 다리(靑流橋)를 건너면 캠핑장, 만남의 광장과 미니골프장이 나오고 계곡을 따라 나 있는 숲 속 산책로는 한 시간 이상을 트레킹 할 수 있는 코스로 탐방객이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어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아유모도시자연공원 에서의 오후를 시원하게 보낸다. 주차장 앞에 있는 매점에서 파는 녹차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매점건물의 돌지붕에 관한 설명을 듣는다. ‘이시야네(石屋根)’라고 하는 돌지붕을 일컫는 대마도에서도 얼마 남지 않은 돌 문화를 대표하는 건물로 이곳에서 나는 널빤지 모양의 돌판으로 지붕을 이어 강풍 등을 막았다고 한다.

아유모도시자연공원을 뒤로하고 다시 이즈하라로 돌아온다. 대마도는 일본 본토(큐슈)에서 132km 떨어진 섬으로 한반도와는 49.5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가장 가까운 국경(國境) 섬으로 오랜 역사적 관계가 서려 있는 땅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거제도보다 크며 제주도 보다 적은 면적으로 전체 인구가 4만3천 명에 이즈하라 인구는 1만6천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일본 나가사키현에 속해 있으며 카미아가타군(上縣郡)과 시모아가타군(下縣郡)으로 크게 나뉘어 있고 대마 본섬을 제외한 109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일본 본토와 한반도를 잇는 창구로 많은 교류문화와 역사유적이 남아 있어 우리에게는 퍽 친숙하면서도 애환이 서린 관계로 이어져 오고 있다. 우리와 사뭇 다른 듯 닮은 점도 있지만 속내를 모를 때가 많다.

만송각에서 맞는 두 번째 저녁이다. 오늘의 석식은 일본 전통의 ‘이시야끼(石燒: 돌판구이)’가 나온다. 점점 익숙해지는 모습들이다. “오늘 내가 사께”는 ‘시라다케’ 명주를 내놓은 안 사장이 선점(?)했다.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일본에서의 두 번째 밤이 이렇게 흘러갔다.

김유복 前 경북산악연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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