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에 점점이 박힌 섬…아소만 천혜의 풍광

아소만에서 들어온 바닷물이 잔잔한 호수가 되어 멋진 풍광을 만든다.

트레킹 3일차(8월 14일), 싱그러운 공기가 가슴에 와 닿는 상쾌한 아침이다.

“오하요 고자이마쓰!” 스스럼없는 아침 인사를 나누며 식탁에 앉아 시원한 일본 된장국(미소시루)으로 어제의 숙취를 푼다. 첫 일정이 쓰시마(對馬島)가 ‘둘로 갈라진 지형을 가진 깊은 피오르(노르웨이어로 내륙으로 깊게 뻗은 灣) 형태로 된 ‘아소만(淺茅灣)’을 끼고 조성된 ‘아소베이파크(あそうベイバ―ク)’로 간다. 아소만에서 흘러들어온 바닷물이 양안(兩岸)의 낮은 산을 끼고 잔잔한 호수가 되어 아름다운 경관을 만든다.

산허리를 감싸며 걷기 좋은 산책로가 있어 물결에 흔들리는 산 그림자와 함께 조용한 아소베이파크를 마냥 걸어간다. 너른 초원에는 캠핑장도 있고 호수를 가로지르며 카약을 탈 수 있는 선착장도 있다.
 

아소베이파크 공원에 있는 말목장 입구.

공원 안에 있는 대마도 토종 대마 말을 키우는 말 목장에서 먹이 주기 체험을 할 수 있어 가족 단위로 즐기러 오는 관광객들이 많다고 한다. 일행들도 호기심 어린 모습으로 건초를 집어 말과 재미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아소배이파크 입구에 큼지막하게 새워진 안내판.

아소베이파크 산책로 트레킹을 마치고 아소만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에보시다케(烏帽子岳)’로 간다. 재미 나는 한자음(漢字音) 풀이로 ‘까마귀 모자 봉우리’라는 뜻의 봉긋한 산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서 아소만을 비롯한 대마도를 360도로 훤하게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아소만에 들어선 수많은 섬 들과 바다와 맞닿은 하늘 그리고 올망졸망한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광이 놀랍다. 주변 원근 지형과 명칭을 소상하게 새겨 놓은 동판과 더욱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망원경도 설치되어 있다. 대마도 관광코스에서는 빠지지 않는 명소로 알려진 ‘에보시다케’에서 아소만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쁜 일행들 모습이 꽤 나 재미있어 보인다.

전망대를 내려오면 주차장에서 찹쌀붕어빵을 구워 파는 매점이 있어 탐방객들에게 인기가 있었는데 오늘은 아쉽게도 문을 닫았다. 명절 연휴로 붕어빵 맛을 볼 수가 없어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다.
 

바다의 신을 모신 와타즈미신사로 들어오는 도리이가 바다에 세워진 모습.

10여 분 걸리는 곳에 대마도 대표적 신사인 ‘와타즈미신사(和多都美神社)’가 있다. 예전에는 신사 탐방이 가능했는데 현재는 출입을 제한하고 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이 신사는 바다의 신(용왕)을 모시는 곳으로 바다로 나 있는 다섯 개의 ‘도리이(烏居)’중 해수면 위에 서 있는 두 개의 도리이가 조수(潮水)에 따라 모습이 바뀌면서 잔잔한 아소만과 어우러져 신비의 세계를 연상케 한다. 또한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후손을 모시는 곳이라고도 알려져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하는 곳으로 바다와 도리이를 배경으로 하는 유명 포토존이기도 하다.
 

신화의 마을 입구에 우뚝 세워진 탑모형이 이색적이다.

다시 이즈하라로 가는 길에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원에 들렀다. 이름도 신비로운 ‘신화(神話)의 마을(鄕)’이다. 주차장을 지나 일본 정원을 보여주는 전통 가옥과 너른 초원 위에 설치된 각가지 놀이기구와 함께 캠핑장 마루가 군데군데 놓여 있고 아소만에서 흘러들어온 호수 같은 잔잔한 바다가 어우러진 환상적인 풍광이 연출되는 ‘신화의 마을’을 느긋하게 둘러 보고 나온다.

한 시간 가까이 달려 이즈하라에 도착했다. 점심 식사는 특별히 섭외한 그랜드호텔 레스토랑에서 먹는다. 연휴라 시내 웬만한 식당은 문을 닫아 마땅한 식당을 찾기 어렵다. 큰 호텔이라 음식도 깔끔하게 나오고 분위기도 좋아 기분 좋은 점심을 들었다. 식사 후 오후 일정이 이즈하라 시내 관광과 자유 시간이라 그리 서둘지 않아도 되지만 초행인 회원들을 위해 서둘러 시내 관광에 나선다.
 

이즈하라 금석성 안에 있는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 모습.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 옆에 세워진 안내문에 그간의 역사를 소상히 설명하고 있다.

먼저 금석성(金石城) 안에 있는 조선조 26대 고종황제의 딸인 덕혜옹주(德惠翁主)와 대마도 번주(藩主)의 아들인 소 다케유키(宗武志) 백작과의 결혼을 축하하는 기념비인 ‘李王家宗伯爵禦結婚奉祝記念碑’를 둘러본다.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대한제국의 옹주가 한(恨) 많은 일생을 살게 된 기구한 삶이 반추되는 자리였다. 일본 3대 묘소의 하나라는 ‘반쇼인(萬松院)’에는 천년 넘은 삼나무가 있고 ‘하쿠긴기’라는 돌계단을 올라 서면 대마도 2대 번주의 묘가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즈하라는 우리나라와 오래전부터 교류가 많았고 본토와 잇는 창구로 곳곳에 볼 데가 많다. 조선통신사역사관이 자리하고 있고 후미진 골목을 돌아 오르면 조선말 일본과의 합병에 반대하고 투쟁한 충신이자 지조 높은 유학자인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선생께서 대마도로 유배되어 억울하게 순국하신 흔적이 남아있는 ‘수선사(슈젠지)’를 볼 수 있다. 수선사에는 ‘최익현순국기념비’가 쓸쓸히 서 있어 망국의 한(恨)이 서리는 곳이기도 하다. 시내 골목길에 유난히 눈에 띄는 돌담이 예사롭지 않다. 빈번한 화재 때문에 주민들이 주택 사이에 방화벽을 두껍게 쌓은 돌담이 이제는 관광객을 모으는 볼거리로 유명해졌다. 이즈하라 시내를 가로지르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작은 운하에는 물고기가 거슬러 올라와 노닐고 운하 위로 놓인 여러 개 다리에 낭만을 부르는 나무 의자가 놓여 있어 운치를 더한다.
 

대마도 특유의 요리로 유명한 시마모토식당 모습.

시내 관광을 마치고 대마도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위해 이즈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깊은 식당으로 알려진 ‘시마모토(志まもと)’로 간다. 너른 돌판에 갖은 신선한 해산물을 올려 구워 먹는 대마도 특유의 요리(いけす料理)가 유명하고 만찬장 내에 공연 무대가 있어 손님들에게 일본 노래와 전통춤을 선보이는 ‘오카미상(おかみさん:女社長)’의 솜씨를 볼 수 있어 오래전부터 이름이 난 곳이다. 이즈하라에서 해마다 열리는 ‘아리랑 마쓰리(祝祭)’를 주관하는 등 한·일 교류에도 헌신하고 있다는 오카미상이 반갑게 맞아줘 모처럼 기분 좋은 식사 자리가 되었다. 이날의 “오늘 사케(알본술)는 내가 사께”는 늘 벼르던 이 원장이 시쓰마 명주(名酒)를 내놓는다.
 

이즈하라 시내 주택가에 만들어진 방화벽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내자 모습.

대마도 트레킹 마지막 일정인 4일차(8월 15일)가 시작된다. 서둘러 짐을 꾸려 호텔 밖으로 나와 호텔 사장 내외와 석별의 인사를 나누고 함께 기념 촬영을 하는 등 아쉬움을 달랜다. 만송각의 3박 4일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즈하라를 떠나 히타카츠로 가는 382번 국도상에 있는 ‘만제키바시(萬關橋)’에 먼저 들렀다. 동쪽의 아소만과 서쪽의 미우다만을 잇는 인공운하를 건설하고 다리를 놓아 당초 협소한 물길을 넓혀 큰 배(전함 등)가 드나들 수 있도록 바닷길을 원활하게 한 대역사(大役事)의 현장을 관광지로 만들어 대마도의 또 다른 명소로 러시아와의 해전(海戰)이 유명한 곳이다.

만제키바시를 떠나 대마도의 숨은 비경(秘境)이라 알려진 ‘슈시강단풍길(舟志川もみじ街道)’ 트레킹을 위해 이동한다. 지금은 단풍철이 아니라 탐방객이 없지만 길 양옆으로 빼곡히 들어선 단풍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슈시강 맑은 물길이 굽이굽이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비경의 숲길을 걸으며 쓰시마(대마도)의 자연에 도취 되는 시간을 가져본다. 대마도의 도로 폭이 좁고 구비가 많아 도보 여행자들이 특히 앞뒤를 잘 살펴야 할 부분이다. 슈시단풍길 트레킹의 당초 일정이 3시간의 여유를 주었지만 아쉽게도 한 시간 만에 끝을 내야 했다. 7호 태풍 ‘란’이 일본 본토 중심부를 통과하여 북상한 여파로 히타카츠에서 출발하는 부산행 선편 출발 시간이 두 시간 일찍 떠난다는 급한 전갈에 서둘러 트레킹을 끝내야 했다. 슈시단풍길을 보러 가을에 다시 와야 할 만큼 아쉽다.

국경의 섬, 쓰시마(대마도) 3박 4일 트레킹을 아쉬운 기억으로 남겨 두고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그런대로 대마도의 깊숙한 속살을 맛보았고 망국의 한(恨)이 서린 역사적 현장도 볼 수 있었던 뜻깊은 트레킹이 되었다고 자평해 본다. 3박 4일 동안 아름다운 쓰시마의 자연과 교감할 수 있어 좋았다.

함께 해준 회원님들과 끝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은 여행사 이상래 이사와 최문영 가이드에게도 감사드린다. 돌아오는 배편에 시달린(?) 회원들의 후일담은 두고두고 재미난 이야기로 남을 만하다. 읽어주신 독자들과 지면을 할애해 준 경북일보사에 고마운 인사를 드리며 트레킹기를 접는다. <끝>

글·사진 = 김유복 前 경북산악연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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