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소희 소설가
권소희 소설가

미국연방 정부 인구센서스국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의 수가 2020년 기준으로 199만 명이고 한인 10명 중 3명이 캘리포니아에 산다고 한다.

우리도 로스앤젤레스에 둥지를 틀었다. 남편이 다니는 학교가 있는 곳이라 다른 곳은 갈 수도 없었고 한 번 자리를 잡으니 타주로 이사를 가는 건 쉽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는 ‘한국의 지방도시’라는 농담이 나올 만큼 한인들이 많이 산다.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 영어가 아닌 “여보세요”라는 음성이 들릴 정도다. 한인들이 많이 산다는 것은 영어가 늘지 않는 이유가 되지만 영어를 몰라도 일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으니 모국처럼 든든하다.

하지만 미국에 사는 친지만 있어도 부럽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헐벗고 굶주릴 때의 이야기다. 아니, 미국에서 정착하기 위해 남모를 애환을 삭히던 한인들의 실상을 몰랐을 때의 오해다. 지금은 통신망의 발달로 손바닥 들여다보듯 지구촌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노출되고 있으니 미국에 산다고 거드름 피울 일도 아니다.

미국에 한인들이 많이 있다 해도 생활정보 수집은 한계가 있다. 미국에는 14살 미만 아동은 절대 부모가 없이 집에 있을 수 없다는 법을 한국에서는 알 수 없었다. 한국에서야 아이들만 두고 외출해도 전혀 문제 될 게 없지만 미국은 절대로 부모 없이 자녀만 집에 두는 건 허용이 안 된다.

하숙집에 기거하며 우리가 오기만 기다리던 남편은 글렌데일이라는 동네에 아파트를 구해놓고 있었다. 남편은 학업과 일을 병행해야 했고 나도 일자리를 구했다. 하지만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서 있어야 하는 아이들이 걸렸다. 다행히도 남편이 얻어놓은 아파트에는 우리 아이 또래의 자녀를 둔 한인 가정이 4가구나 있었다. 모두 아이들을 집에 방치해야 하는 처지가 비슷해서 이웃사촌처럼 지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함께 모여 숙제를 하고 아파트 주차장에서 롤러 브레이드를 타며 부모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어느 날 웬 젊은 남자가 아파트에 눈에 띄었다. 새로 이사 온 모양이다. 그가 한인 유학생인 걸 알았던 건 세탁장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중년 여자가 아들을 만나러 왔다고 해서 그의 신상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아파트 들어가는 입구에 대자보처럼 한국말로 적힌 글이 있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내용은 자세하게 생각나지 않는데 자동차에 손상이 가는 것이 염려되니 주차장에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하라는 그런 내용이었다. 위법인 줄 알면서도 아이들을 집에 두고 일을 다녀야 하는 처지도 처지려니와 롤러 브레이드를 타는 아이들을 거슬러했던 그 남자의 미국물이 어이가 없었다.

아파트라고 해봐야 1·2층 합쳐서 고작 15가구가 사는 건물의 주차장은 손바닥만 한 크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각에는 주차된 차들이 거의 없어 아이들은 저녁에 퇴근할 부모를 기다리며 롤러 브레이드를 타며 무료함을 달랬다. 그리고 아파트에 불만이 있으면 매니저에게 말하면 된다. 그게 미국스타일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대문짝만하게 한글로 써서 붙여놓다니.

누군가 그의 글에 반박의 글을 써서 붙여놓았다. 물론 한글이다. 곧 두 명의 경찰이 아파트에 나타났다. 그 남자가 경찰을 부른 것이다. 경찰이 왔으나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그 남자는 이사를 갔는지 아파트에서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사실 그때 알매니언 매니저가 아파트에 부모 없이 방치된 아이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눈을 감아주었다. 비록 문화에 따르는 차이가 있다 해도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인간적 공감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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