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아이디어·문제 해결력 내공 다진 기초 학문에서 출발"

이창민 미국 메릴랜드주립대학교 과학자..
‘과학기술’은 국가산업 경쟁력이자 국력 원천이다.

경북일보는 ‘실사구시(實事求是) 과학 정신’을 정립하고 기초과학이 국부 창출 원천이 되도록 각 분야 권위 있는 과학 인재와 대담을 통해 한국 과학이 나아갈 길을 지속 모색하고 있다. 이번 주인공은 미국 메릴랜드주립대학교 이창민(35) 과학자다.

이창민 과학자는 경북과학고등학교 12기 졸업생이다.

그는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지난 2017년 9월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전자공학과 Edo Waks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2022년부터 해당 그룹에서 과학자(Assistant Research Scientist)로 재직하고 있다.

다음은 이창민 과학자와의 1문 1답이다.

박사과정 시절이었던 2014년 포스텍에서 열린 국제 워크샵에서 발표하고 있는 모습.
-경북 또는 포항과의 인연.

△경북 영주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이후 2년간 경북과학고에 다니면서 포항에서 살게 됐다. 졸업 후 카이스트로 진학하면서 포항을 떠나게 됐지만, 과학고 시절 동기 친구들과 다양한 추억들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포항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부모님께서 영주에 살고 계셔서 종종 방문하게 된다.

-경북과학고에 입학하게 된 동기는.

△중학교 시절 경북 과학 경시 대회에서 입상하게 됐다. 그 후 전국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북과학고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 수학, 과학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서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인상 깊었다. 선생님들께서도 열정을 가지고 수업 준비를 해주시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환경을 보고 경북과학고에 진학하고자 하는 꿈을 키웠다.

지난 2015년 경북과학고 졸업 10주년을 맞아 모교를 방문하는 ‘내리사랑’ 행사에 참석해 12기 동기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북과학고 재학시절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다면.

△학교에서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키울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물리 학술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학술 발표회, 과학의 날 행사 등을 통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실제 실험을 통해 구현해보는 경험을 가졌다.

청소년 물리탐구토론대회에 참가했던 것도 좋은 기억이다. 학교별로 3명씩 팀을 만들어서 주어진 물리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 이를 다른 팀들과 함께 토론의 형식으로 경쟁하면서 문제 해결 능력과 토론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동기 친구들과 함께 밴드 동아리 ‘포르테’를 만든 것도 기억에 남는다. 경북과학고가 생긴 이래 12년 동안 밴드 동아리가 없었다. 학교의 허가를 받아 동아리를 만든 다음 친구들과 각자 악기를 연습하고, 포항 시내 연습실을 빌려서 합주를 한 다음 2학년 학기 말에 열린 종강파티에서 공연을 했다. 처음 만들어진 동아리라 갖춰진 것이 별로 없었지만, 그만큼 친구들과 의견을 모아 준비하는 과정이 재밌었다. 이후 학교에서 악기와 연습실을 마련해 주셨다.

-물리학 및 반도체를 전공하게 된 계기는.

△중학교 시절 과학경시대회를 준비할 때, 그리고 경북과학고에서 여러 과학 과목들에 대해 깊이 있는 공부를 할 때부터 물리학에 특히 재미를 느꼈다. 자연과학의 기본이 되는 물리 법칙들을 이용해서 다양한 물리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카이스트에 입학하게 되면 1학년 때는 ‘무학과 제도’를 통해 학과 구분 없이 자유롭게 전공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 당시 다양한 수업을 듣고 여러 학과에서 주최하는 학과 설명회를 다녀보면서 물리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마음을 굳히게 됐다.

반도체를 전공하기로 결정한 것은 카이스트에서 대학원으로 진학할 당시였다. 양자 정보와 같은 물리 분야부터 광통신 소자와 같은 공학 분야까지 넓은 범위를 커버 할 수 있는 반도체 광학에 흥미를 느끼고 관련 분야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됐다.

지난 2016년 박사 졸업 발표를 마치고 연구실 구성원들과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사후 연구원을 미국에서 하게 된 동기는.

△박사과정을 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진행하는 연구를 접할 수 있었다. 특히, 미국은 과학 기술 연구를 선도하는 나라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 규모나, 연구 실적이나,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 모두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 학회에 참가했을 당시에도 미국 대학의 연구실을 직접 방문해 보니 좋은 환경이었다. 또, 현재 주로 연구하고 있는 반도체 광학 분야에서 뛰어난 일을 하고 있는 연구자들도 미국에 많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연구 실적 및 현재 연구 중인 분야는.

△대표적인 연구 실적은 반도체 양자점과 나노구조를 이용한 단일 광자원이 있다.

단일 광자는 빛의 단일 입자로써, 양자 상태를 저장할 수 있어 양자 컴퓨터나 양자 네트워크 등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단일 광자원은 원하는 타이밍에 단일 광자를 발생시킬 수 있는 장치인데, 일반적인 광원과 달리 하나의 원자를 제어해서 구현하게 된다. 반도체 물질을 기반으로 하는 양자점은 원자와 비슷한 광학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어 많은 수의 단일 광자원을 반도체 칩 안에서 동시에 만들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반도체 양자점 주변에 나노구조를 만들어서 단일 광자원의 수집 효율을 극대화하고 고품질의 단일 광자를 발생시키는 연구를 진행해 왔다.

최근에는 그동안 연구가 미비했던 통신 파장 영역대에서 단일 광자원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는 원거리 전송에 유리해서 양자 네트워크 구현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관련 연구는 나노 광학분야의 저명한 학술지인 ‘Nano Letters’, ‘Applied Physics Letters, Optics Express’ 등에 게재됐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반도체 양자점과 나노 구조의 상호작용을 통해 단일 광자를 제어할 수 있는 소자를 구현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최근 각광 받고 있는 분야로, 반도체 물질 중 가장 널리 사용되는 규소에서 전자의 스핀과 단일 광자를 결합시킬 수 있는 소자를 구현하는 것이다.

두 연구 주제 모두 통신 파장의 광자를 다루기 때문에 원거리 양자 통신 및 양자 네트워크 소자를 개발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반도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많은 수의 양자 비트를 구현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된다.

지난 2018년 박사후 연구원 시절 미국 산호세에서 진행된 광학회에서 포스터 발표를 하는 모습.
-연구를 수행하며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움을 겪었던 적도 있었을 것인데 그때마다 어떻게 극복했는지.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제 경우엔 주변 사람들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일적으로는 지도교수나 연구실 동료들과 함께 문제에 대해 토론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해결책을 얻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일 외적으로는 다른 유학생들과 함께 교류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

지난 2019년 박사후 연구원으로 소속된 메릴랜드주립대 Edo Waks 교수 연구실의 신입생 환영 모임.
-과학 인재 발굴 및 육성을 위해 개선이 필요한 교육 정책이 있다면.

△수학과 과학 과목의 경우 단순히 문제 풀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내용들이 나중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함께 알려줬으면 한다. 이런 방식의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좀 더 흥미를 가지고 공부할 수 있을 것이며, 배우는 이론이나 지식을 큰 그림 속에서 기억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또, 기초를 먼저 다지는 교육이 됐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요즘 인공지능 기술이 사회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니 대학교에 인공지능 학과를 만들고 중학교, 고등학교 때에도 관련 교육을 강화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인공지능 분야의 기본이 되는 수학과 전산학을 충실히 공부하고 그 기본 바탕 위에서 인공지능을 응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기초가 부족하면 결국 나중에 새로운 문제를 풀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데 한계가 생긴다. 아직 기초를 다져야 할 중학교부터 대학교 시기에 응용 분야를 ‘인공지능’이라는 좁은 범위로 한정하기보다 그 밑바탕이 되는 학문들에 대한 교육에 힘썼으면 좋겠다.

-기초과학, 그리고 응용과학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더욱 발전하려면.

△연구 행정 시스템이 좀 더 발전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연구자들이 마음 편히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과도한 행정 업무를 줄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좋은 연구에 연구비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됐으면 한다. 일부의 경우이긴 하지만 연구 실적을 평가할 때 연구 내용을 함께 보지 않고 일괄적으로 점수화해서 평가하는 방식으로는 좋은 연구를 유도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과학고 후배들에게 조언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경북과학고에서 보낸 2년의 시간이 연구자의 길로 나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교과서 내용을 넘어서서 좀 더 도전적인 문제를 접할 수 있었다. 문제 풀이 외에도 실험 수업이나 학술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탐구하는 방법을 익혔다. 수학과 과학에 대한 열정을 가진 친구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도 매우 좋은 환경이다. 이러한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공부하고 탐구해 보았으면 한다.

또, 틈틈이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겠다. 인터넷에 있는 모든 정보 중 약 70%가 영어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세상이 점점 더 빨리 변하고 공부해야 할 지식의 양은 많아지고 있다. 나중에 일하는 곳이 한국이든 해외든, 학계든 아니든 간에 영어를 잘하면 큰 도움이 된다.

-앞으로의 계획 및 목표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 주제를 잘 발전시켜서 좋은 연구를 하고, 수준 높은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이 목표다. 동시에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연구비를 많이 수주하는 것도 중요하다. 논문을 게재하는 것이 실적을 인정받는 것이라면, 연구비를 수주하는 것은 연구의 방향성을 인정받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마련한 연구비를 가지고 연구 장비에 투자해 더 좋은 연구를 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유병탁 기자
유병탁 yu1697@kyongbuk.com

포항 남구지역, 교육, 교통, 군부대, 사회단체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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