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넘게 유기공예 외길을 걸어온 이상주 천마유기공방 대표. 황영우 기자

“구리 78%, 주석 22%가 만들어내는 미학(美學).”

포항에 수많은 인생 풍파를 이겨내고 40년 넘게 유기 공예 외길을 걸어온 남자가 있다.

이상주(63) 천마유기공방 대표는 말은 어눌하고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장애가 있지만 한 땀 한 땀 깎여가면서 은은한 빛을 내는 유기와 닮아 있었다.

4일 만난 이 대표는 수수한 미소를 띤 채 경북일보 취재진을 맞이했다.

40년 넘게 유기공예 외길을 걸어온 이상주 천마유기공방 대표가 각종 대회에서 입상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모습. 황영우 기자

포항시 북구 기계면 지가리 조그마한 도롯가에 자리잡은 공방 내부는 쌉싸름한 금속 냄새와 1000℃를 넘는 주물 고로 등으로 수많은 공예작품 탄생을 짐작게 했다.

전통을 고수하는 이 대표의 ‘동력’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경주가 고향인 이 대표는 지난 1961년 오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양반 부잣집 자녀로서 윤택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을 이 대표에겐 생사를 오가게 하는 큰 시련이 2차례 닥쳤다.

강에 떠내려가고 깊은 우물에 빠져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어린아이에겐 상처가 됐고 말과 청력 대부분을 잃게 됐다.

겨우 마음을 다잡고 고등학교까지 마친 그는 청각 장애 판정을 받은 뒤 부산에 위치한 금속 조형 회사에 취직하면서 처음으로 공예 세계에 발을 디뎠다.

배운 지 4달 만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면서 비범한 실력을 나타냈다.

그러나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한 채 다양한 종류의 공예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생계가 달린 입장에선 좀 더 나은 조건과 환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40년 넘게 유기공예 외길을 걸어온 이상주(63) 천마유기공방 대표가 각종 대회에 입상한 후 받은 상장들. 황영우 기자

향나무 등 목공예, 금속 조각 분야 등을 단기간에 섭렵하면서도 대회 동상 입상 등 재야 고수로서의 내공을 자연스레 닦아나갔다.

중국은 물론 어느 곳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자동차 프레스 공정, 에어컨 설치까지 익혔다고 하니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다.

40년 넘게 유기공예 외길을 걸어온 이상주 천마유기공방 대표의 공방 옆 판매전시장에 비치된 유기공예품들. 황영우 기자

다보탑, 석가탑 공예품과 무형문화재의 옥피리를 딴 작품까지 종류도 다채롭다.

하지만 한때 잘 나가던 그에게 IMF 외환위기와 코로나19는 두 번 울게 했다.

경주지역에서 공예 인부로 일하면서 재기를 꿈꾸던 그는 지난 2013년 ‘천마유기공방’을 차려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유기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2015년 제45회 경상북도 공예품대전 대상, 제45회 대한민국 공예품대전 장려상 등 수많은 입상을 통해 실력을 공개적으로 인정받았다.

9첩, 7첩, 5첩은 기본이고 향로, 반찬그릇, 숟가락, 젓가락에다가 다양한 형태의 마사지기까지 사실상 모든 형태의 유기 작품이 제작 가능하다.

40년 넘게 유기공예 외길을 걸어온 이상주 천마유기공방 대표가 공방 내에서 연마작업을 하는 모습. 황영우 기자

이상주 대표는 “옛 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쓰여 독이 들었는지 유무를 가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광과 무광에 따른 예술적 빛깔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유기의 변함없는 ‘매력’”이라며 “전통의 가치를 숨이 다할 때까지 지키겠다”고 명인의 면모를 보였다.
 

황영우 기자
황영우 기자 hyw@kyongbuk.com

포항 북구지역, 노동, 세관, 해수청, 사회단체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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