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호 전 영천교육장
이규호 전 영천교육장

가을이 무르익어가면 학교에선 가을운동회가 펼쳐졌다.

만국기가 펄럭이는 가을 하늘 아래 열리는 운동회는 어린이보다 어른들을 더 설레게 하는 마을 잔치였다.

황톳빛 운동장에 하얀 횟가루로 단장을 한 교정엔 축제 분위기로 들떠있었고, 성공적인 운동회를 위해 바쁘게 오가는 선생님들, 개선문 안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했던 모습들, 달리기에서 받은 3등이란 손목 도장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지우지 않았던 그 시절이 생각나는 가을운동회다.

출생률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형제자매가 줄어들어 서로 부대끼며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히는 인성과 우애의 형성이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전체를 위한 어떤 생각이나 행위보다는 나만 아는, 내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착각 속에서 자라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전체를 위해 개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를 가르쳐주는 곳이 학교이고 체육활동이다.

더구나 구성원 전체가 승리를 위해 서로 돕고 희생하며, 하나가 되어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몸에 익히고 가르쳐주는 것이 단체경기이고, 체육활동의 궁극적인 방향이자 목표이기도 하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운동회는 학교 안팎의 비판을 받았다.

교사의 업무부담 과중, 매년 비슷비슷한 프로그램 답습, 연습으로 인한 수업결손, 변화하는 운동과 놀이 문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학교 시설과 용구, 보여주기 위한 행사라는 것 등이 그것이었다.

그러면서 우리들 기억 속의 운동회는 점점 다른 양상으로 변화되었다.

예전엔 ‘가족과 함께하는 운동회’였다면, 이제는 수업시간에 저학년, 고학년이 나뉘어 오전 중에 마치는 ‘학생들 끼리만 즐기는 운동회’로 변했다.

최근에는 운동회 전문이벤트 업체까지 등장하여 이른바 외부협력형 운동회가 성행하고 있다.

학생들의 연습 부담을 덜고, 수업 결손도 피할 수 있으며, 아이들의 참여가 쉽고 흥미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개인별 참여 시간이 많아진 것들은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운동회 연습을 통해서 얻게 되는 아이들의 체력향상과 공동체의식 함양, 성취감, 전통계승, 성패에 따른 승복 자세 등은 예전에 비해 현저히 낮아졌고 예산은 과도하게 지출한다는 단점도 지적되고 있다.

이제 그 선택은 학교구성원들의 몫이 되고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학교와 지역사회의 특성을 고려하여, 교육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를 지키며, 운동회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면 될 것이다.

학생수 급감, 여교원의 증가 등 어려운 여건이지만 격년제라도 좋으니 예전처럼 학부모도 참여하는 축제 같은 가을운동회를 개최로 단절되고 있는 학교와 학부모, 지역사회의 관계를 회복하고, 교권을 바로 세우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기억은 추억이 되고 추억은 역사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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