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천 파리1대학 국제관계사 박사
정상천 파리1대학 국제관계사 박사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유대교 기념일인 지난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알 아크사 홍수 작전’)하여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그동안 끊임없이 이어져 왔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소규모 분쟁이 전쟁으로 확산되어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으며, 이 전쟁의 여파로 국제유가도 4% 급등하는 등 세계경제가 출렁이고 있다.

하마스가 이번 공격을 감행한 이유를 “최근 최고조에 달한 알아크사에 대한 이스라엘의 적대행위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진짜 이유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를 견제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올해 8월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외교정상화 논의가 시작되었으며, 이것이 성사될 경우 그동안 팔레스타인에 가장 큰 원조를 해왔던 사우디로부터의 지원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2022년 12월 극우파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재집권하면서 서안 지구 유대인 정착촌 확대에 속도를 내기 시작하였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면서 분쟁의 불씨가 커졌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이-팔 분쟁은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 국가를 건설하면서부터 발생하였다. 원래 팔레스타인은 오스만 칼리프 제국의 일부였으나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체결된 사이크스-피코(Sykes-Picot) 협정에 따라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요르단, 그리고 팔레스타인 이라는 5개의 정치적 단위로 분할되면서 탄생하였다. 그러나 시온주의 유대인들에게는 팔레스타인은 유대인들의 조상들이 차지했던 ‘이스라엘의 땅(Eretz Yisrael, 에레츠 이스라엘)’이었다. 19세기 말 유럽인들의 차별을 벗어나기 위해 이스라엘의 땅에 유대인들의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시오니스트 운동’이 일어났다. 2차 세계대전 때 홀로코스트로 유대인 600만여 명이 죽는 참사가 발생하자 나라 없는 민족의 설움에서 벗어나고자 유대인들만의 나라 건설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에 대한 밑그림은 소위 ‘밸푸어 선언’에서 찾을 수 있다. 1917년 11월 영국의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가 1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을 지원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국가를 수립하는 데 동의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수백 년간 평온무사하게 살고 있던 땅에 갑자기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수처럼 밀려와서 나라를 건국하였으니 ‘아닌 밤중에 날벼락’도 이것만 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이후 양측은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지내왔으며, 오늘날까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 정부에 극우파가 득세하여 나일강에서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는 모든 땅을 통제하겠다는 대(對) 이스라엘, 즉 ‘팍스 유다이카(Pax Judaica)’의 야망을 버리지 않는 한 이-팔 간의 분쟁은 넷플릭스의 이스라엘 영화 ‘파우다(FAUDA : 이스라엘어로 ‘혼돈’을 의미)’에서처럼 피의 복수가 그치지 않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인 하마스와 이스라엘 정규군과의 싸움은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 중동 국가들이 연합하여 벌린 이스라엘과의 전쟁은 대부분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승리로 단기간에 끝이 났다. 이번에도 사우디의 빈 살만 왕세자가 팔레스타인 편에 서서 갈등을 멈추기 위한 노력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5차 중동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미국이 이번 사태에 이스라엘 지지를 밝히며, 세계 최대 핵추진 항공모함을 전진 배치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였지만 거기까지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8개월이나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전선을 더 확대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이-팔 분쟁은 종교, 영토, 역사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을 UN의 공식국가로 인정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가 없는 한 지정학적 분쟁지역으로 계속 남아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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