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일 한동대학교 공간시스템공학부 교수
김주일 한동대학교 공간시스템공학부 교수

토지개발 관련 비리가 늘 문제가 되다 보니, 때로는 우리나라의 관련 규제가 너무 강한 것이 아니냐고 비판도 있다. 규제가 지나치다 보니, 이를 피하기 위한 비리의 소지도 많아진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선진국 경우를 살펴보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유럽의 경우, 대부분의 도시는 지역의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매우 까다로운 규제를 적용하곤 한다. 건축물을 맘대로 헐거나 짓기 어려운 것은 물론, 토지를 구입해도 공공이 정해놓은 상세한 계획안에 따라서 개발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 한국의 규제수준이 과도하다고 볼 근거는 희박하다는 것이다.

국토부가 올해 초 ‘도시계획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3개의 특례구역, 즉 <도시혁신구역>, <복합용도구역>, 그리고 <도시계획시설 복합구역>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 중 <복합용도구역>, <도시계획시설 복합구역>의 필요성은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여러 용도를 혼합한 거점을 만들거나, 고속도로나 철로 위 공중에 호텔을 짓는 것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동일한 토지 위에 보다 다양한 기능을 콤팩트하게 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려는 적지 않다. 지나친 규제 완화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도시혁신구역>이 그 대상이다. 표현만 보아서는 대체 어떻게 혁신을 도모하는 구역인지 애매하다. 그런데 설명에 등장하는 ‘화이트 조닝’이라는 표현이 그 성격을 분명히 말해준다. 화이트 조닝이란 이를테면 토지개발에 있어서의 백지수표와 같은 접근이다. 이 구역이 지정되는 땅은 전에 묶여 있던 규제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땅이 된다는 것이다. 용적률, 건폐율 등 기존 규제를 벗어나게 되는 것은 물론, 용도에 있어서도 이제는 그 허용범위가 사라지게 된다.

공간 혁신을 위해 때로는 규제를 과감히 벗어나야 할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취지에 대한 설명대로, ‘민간의 창의적인 계획에 의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일 수도 있다.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 같은 세계적 랜드마크를 형성하려면 이러한 백지수표식 개발이 필요할 법도 하다. 하지만 과연 이 제도가 적용 구역이 아닌 국토 전반에 가져올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검토한 것일까.

우선, 개발 규제 완화가 여전히 특혜나 비리와 연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제도가 쉽사리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토지의 용도를 바꾸는 것만으로 수천억이 오가기도 하는 이런 어두운 시장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런 중에 백지수표와도 같은 이런 개발방식이 과연 정상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까? 온갖 의혹과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유사한 제도가 있는 상황에서 굳이 새로운 장치가 필요한가 하는 점도 의문이다. 규제완화를 가능하게 하는 ‘특별’ 구역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계획법 관련으로는 ‘특별계획구역’, 건축법 관련으로는 ‘특별건축구역’이 바로 그것들이다. 규제를 넘어설 수 있는 ‘특별’한 구역 시리즈가 너무 많아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정말 걱정되는 부분은 지방도시에 미칠 영향이다. 규제완화 구역은 기본적으로는 포화상태에 달한 수도권을 위한 제도일 수밖에 없다. 지방도시로서는 고층 건물을 올린다 해도 공실만 나게 될 시점에 굳이 이 제도를 활용할 여유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수도권에 다시금 여유를 주는 장치가 되면서 지역 간 격차만 확대하게 되는 건 아닐지.

수도권 문제를 풀기 위한 조치에 골몰하다 보면 지방도시에는 위기로 작용할 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체급 차이가 격심해진 지금, 이런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수도권만 세상인 것처럼 다루다 보면 지방소멸은 정말 불가피한 현실이 될지 모른다. 중앙 정부의 정책에 있어서 양면을 동시에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곤충의 눈’을 가질 것을 요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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