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나교 수피아미술관 기획실장·미술학 박사
방나교 수피아미술관 기획실장·미술학 박사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는 미국 초기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미술가이다. 오키프가 미국 현대미술에서 차지하는 뚜렷한 위치와 명성은 독창적인 작품뿐만 아니라, 스티글리츠와의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생존하기에 가혹한 뉴멕시코의 사막에서 여성의 몸으로 독립적인 삶과 개척자의 정신을 보여준 그녀의 생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오키프는 미국 모더니즘의 초창기부터 자연에 근원을 둔 추상 작품을 시작으로 접사 시점을 이용한 커다랗게 확대된 꽃 그림, 뉴멕시코의 풍경화 등 주변적인 타자성 소재를 작품 안에서 포용한 작가이다.

조지아 오키프作, 분홍색 배경의 두 송이 칼라,1928년

오키프는 평소 작품 주제에 관한 내용의 근원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고, 그녀는 특정한 장르의 예술 이론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고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키프의 작품은 언제나 동시대의 다른 미술 경향에 열려 있어서 그녀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지평을 가능하게 하였다. “내가 나도 모르게 내 삶을, 내 인생에서 일어난 일을 그려왔다는 걸 깨달았다”라는 오키프의 언급처럼, 그림은 그녀의 삶 자체인 동시에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오키프는 무엇보다도 여성 미술가로 분류되기보다 예술가로 공정한 대우를 받기를 원했지만, 생전에 오키프 작품에 대한 비평은 철저하게 ‘여성성’에 국한되어 논의되었다. 그녀의 작품에 대한 1910년대 중반부터 전개된 남성 비평가들의 편향된 비평과 1970년대 페미니즘 시각에서 이루어진 비평들은 모두가 여성성에 근거한 성적인 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키프가 왕성하게 활동한 시대는 가부장제의 이분법적 사고가 주류였던 성 불평등사회였기에, 여성과 여성 미술가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미술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그 영향력을 미쳤다. 당시 남성을 문화로 간주하고 여성을 자연으로 간주하던 시대를 살아간 오키프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편향된 비평 담론이 평생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다. 오키프는 여성 미술가로는 보기 드문 명성과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녀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인색하고 미술사에서 위상 또한 인지도와 비교해 주변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현대사회는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gender)역할로 인해 야기되는 성 불평등 문제에서 자유로운가?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이 보편화되고 있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서도 성차별에 대한 반목은 수그러들기보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젠더 전쟁’으로 불릴 만큼 그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고 있다.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타파하고 여성의 권익 보장, 성 평등의식의 확산, 양성평등교육 등과 같은 해결방안으로 거창하게 접근하기보다 일상에서 통용되는 언어부터 고쳐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여배우가 아닌 배우로, 여성 미술가가 아닌 미술가로, ‘아줌마’ ‘아가씨’ 아닌 고객님으로, 이같이 부적절하게 사용된 호칭들을 하나씩 정리해 가다 보면 보다 현실적인 성평등사회가 실현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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