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고 한철수·최학기 일병 유해 확인

고(故) 최학기 일병 유족 자택에서 열린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책 대신 총을 들고 낙동강 전선의 포화 속에 몸을 내던졌던 학도병의 유해가 73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2005년 경북 포항에서 발굴한 6·25 전쟁 전사자 유해의 신원을 국군 3사단 소속 고(故) 한철수 일병과 최학기 일병으로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두 학도병의 유해는 지역주민의 제보를 토대로 국유단이 전문 발굴 병력을 투입해 수습했다.

국유단은 한철수 일병의 병적 자료에서 본적지를 전북 익산으로 파악하고 해당 지역의 제적등본과 비교해 2017년 고인의 남동생 한건수 씨를 찾았다. 한 씨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고인과 가족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1933년 3월 전북 익산에서 7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난 한 일병은 1950년 7월 함열중학교 재학 중이던 1950년 7월 나라를 지키겠다며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국군 3사단에 배치된 한 일병은 포항전투에 참전해 북한군 남하를 저지하던 중 1950년 8월24일 17세의 나이로 산화했다.

1950년 8월 24일부터 9월 22일까지 진행된 포항전투는 국군의 동부전선을 돌파해 부산에 진출하려던 북한군을 국군이 포항 도음산 일대에서 저지한 전투다. 낙동강 동부지역 작전을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한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최학기 일병은 2021년 부산·경남지역에서 실시한 ‘민·관·군 협업 유가족 집중 찾기’를 통해 가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육군 제39보병사단 소속의 경남 김해 활천 2동대의 예비군 지휘관이 국유단에서 받은 지역별 전사자 명부를 활용해 고인의 조카 최용준 씨를 찾아냈으며, 국유단에서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가족관계를 확인했다.

최학기 일병은 1931년 4월 경남 김해에서 5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결혼했으며 김해공립농업학교(현 김해생명과학고)를 다녔다.

전쟁이 발발하자 고인은 신혼 생활과 학업을 뒤로하고 1950년 8월 학도병으로 입대했다.

최 일병은 한 일병과 같은 국군 3사단에 배치돼 포항전투에 참여했으며 입대한 지 한 달 만인 1950년 9월 6일 19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국유단은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 발굴을 시작한 이래 총 221명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확인된 전사자의 신원을 유족에게 알리는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19일 전북 익산의 고 한철수 일병 유가족 자택에서 열렸다. 20일에는 경남 김해에 있는 고 최학기 일병의 유가족 자택에서도 행사가 진행됐다.

한철수 일병의 조카 한상덕 씨는 “세월이 오래 지나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었는데 어려운 과정을 거쳐 삼촌의 유해를 찾아준 국가에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최학기 일병의 동생 최삼식 씨는 “이번 현충일에도 TV를 보면서 유해라도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큰형님을 찾았다고 하니 마치 살아서 돌아오신 것 같아 마음이 찡하다”며 감사를 표했다.

6·25 전사자 유가족은 전사자의 8촌까지 유전자 시료 채취로 신원 확인에 참여할 수 있다. 제공한 유전자 정보로 전사자 신원이 확인되면 포상금 1천만 원이 지급된다. 관련 내용은 국유단 대표 전화(☎ 1577-5625)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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