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균 영남대학교 객원교수·전 대구경북연구원 원장
오창균 영남대학교 객원교수·전 대구경북연구원 원장

정치와 권력을 바라보는 시각은 역사적 시공간에 따라 엇갈린다. 사회문화적 토양에 따라서도 마찬가지다.

동서양은 이상적 정치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서구에서는 사람들의 의지 실현과 갈등 해결에 초점을 맞추면서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하지만 동양적인 관점으로 볼 때 그런 서구인들의 정치관에는 뭔가 허전한 게 있다. 한계가 분명한 것 같다. 철저하게 자유로운 인간의 경지를 추구하는 동양에 비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특히 노자가 말한 정치와 권력은 서구의 그것과 분명하게 차이 난다. 노자는 인위의 정치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무위의 정치를 앞세웠다. 인위란 일부러 계산 궁리해서 유심(有心)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인위에 근거한 정치는 백성들의 욕구와 충돌하고 불평등이나 부자유를 낳지만, 무위정치는 천도(天道)의 형평성에 근거하므로 통치자와 백성이 어울린다. 천하는 신묘한 그릇이어서 인위로 다스리려는 자는 망치고 잃게 되는 이치다.

무위정치가 제대로 작동하면 백성은 통치자에 관한 구체적 사항을 알고자 하지 않는다. 그저 본성을 근본 삼아 일상 생활한다. 비록 통치자가 거창한 성과를 거두고 큰 업적을 이룩해도 백성들 쪽에서는 이를 자신들의 공이라 여긴다. 바로 “해 뜨면 일어나 들에 나가고 날 저물면 돌아와 쉰다.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 갈아 밥 먹으니 제왕의 권력인들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라고 노래하는 경지다. 이처럼 무위정치에서는 백성이 아무런 불만 없이 흥겨워하고 권력을 완전히 잊어버릴 만큼 안정적인 태평성세를 최고로 친다.

무위정치의 실천 방법은 단순해 보이지만 심오하다. 통치자가 감히 천하에 앞서지 않으려는 자세와 백성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굳게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 백성을 아끼고 소중히 생각하면 그들은 통치자를 위해 모든 걸 바친다. 마찬가지로 과다한 세금 징수와 낭비를 피하면서 백성들에게 간섭하거나 지도하려 하지 않으면 결국 앞서게 된다. 그 과정에 힘센 권력이 저절로 생긴다.

또 무위정치는 강함을 알아도 차라리 부드러움을 지킨다. “천하의 골짜기가 되면, 상덕이 떠나지 않아 다시 갓난아이로 되돌아간다. 세상에 드러날 길을 알면서 남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자신을 지킨다면 인심은 저절로 모여든다”는 거다. 이와 관련해 노자는 높은 것과 낮은 것을 서로 대립적이기 보다 상호 근접한 관계라고 했다.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통치자와 백성을 일반적인 상하주종의 틀에 가두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것이 새로운 관점의 정치와 권력 유형이다.

노자의 무위정치에 등장하는 비가시적 권력은 외형상 서구의 헤게모니 개념과 많이 닮았다. 실제로 백성은 무위정치 상황에서 자신들이 통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나 무위정치에서 백성이 통치를 의식하지 못하고 지도자의 존재만 아는 것은 헤게모니적 권력처럼 사회구조 상층부가 사고와 세계관을 조종한 탓이 아니다. 이상적인 지도자가 최상의 정치를 통해 백성들에게 오직 그가 있다는 사실만 알렸기에 나타난 현상이다. 통치자가 자신의 주관을 버리고 백성의 입장에서 일을 처리해서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노자는 “성인은 고정불변한 마음을 없애고,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동양의 무위에는 손에 잡히는 권력이 없다. 뚜렷하게 드러나는 수단에 의한 통치를 강력히 배척하면서 백성을 자연의 이법(理法)으로 이끄는 부존재의 권력이 있을 뿐이다. 서구는 오랜 세월에 걸쳐 다수의 지배와 타협의 정치를 유형화했고, 동양은 이렇듯이 독특한 무위의 정치를 꿈꿔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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